[자연감수성up] 슬기로운 퍼머컬쳐Permaculture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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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감수성up] 슬기로운 퍼머컬쳐Permaculture 생활
  • 이태은 교도
  • 승인 2020.08.18 22:41
  • 호수 11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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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감수성up
원불교환경연대
나이만큼나무를 심자
서울교당 교도
‘멸종저항 찍어줄게’     출처=원불교환경연대 밴드


햇살은 그리 따갑지 않았다. 오랜 장마, 아니 기후변화로 인한 긴 장마 중이지만 잠시 구름이 걷힌 수락산은 향기로운 바람마저 내어준다. 지난 주말 ‘퍼머컬쳐 여름캠프’가 열린 수락텃밭에 누가, 얼마나, 아침부터 왔을까 의심을 품고 그곳으로 내달렸다.

‘멸종저항 찍어줄게’와 ‘헤나 타투’ 주인장이 수락텃밭 4개 원두막 중 센터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다. ‘멸종저항’은 지난해 영국에서 시작해 유럽을 달구었던 단체이름으로 기후위기에 꼼짝없이 당할 멸종종인 인간의 저항을 담았다. 지하철을 막고, 국회대로를 점거하고, 공항과 철도를 마비시키기 위해 매일 수천 명이 거리에 모였고 또다시 수천 명이 경찰에 연행되어도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라’는 멸종저항의 선명한 요구를 받아들여 영국의회가 세계최초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이 운동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태은 교도의 '멸종저항 찍어줄게'    출처=원불교환경연대 밴드
‘헤나 타투’   출처=원불교환경연대 밴드


멸종저항 퍼포먼스에는 늘 빨간 페인트가 흥건하게 흐르고 붉은 정령들이 3초에 한 종씩 사라져가는 멸종종들의 넋을 위로하듯 춤을 춘다. 붉은색은 불타는 지구, 피 흘리는 지구를 상징한다.

동그라미 안에 모래시계 형상을 담은 멸종저항 마크와 Action now를 가방과 티셔츠, 손수건에 찍어 주던 주인장 이마에 땀이 맺힌다. ‘잡초라도 충분한 풀학교’ 학생들이 차린 ‘별다방 말고 풀다방’에서 손수 만든 수제 풀차를 건넨다. 밭에서 채취한 박하, 민트, 수레국화, 민트, 메리골드를 짬뽕한 ‘코디얼’은 명치끝까지 시원하다.

전국에서 모여든 퍼머컬쳐(Permacul-ture) 신봉자(?)들은 요리 준비를 하고 원두막을 기웃거리다 행드럼과 장구자락에 맞춰 즉흥잼(두드리다)을 즐기고 일부는 ‘엄마 손은 약손 명상 힐링’에 몸과 정신을 맡긴다. 영구(permanent)와 농업(agriculture, 혹은 문화 culture)의 합성어인 퍼머컬쳐는 영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농사와 토지 이용에 대한 윤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문명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전제한다.

볏짚과 풀로 멀칭을 하고, 약초와 허브 등을 심어 병과 해충을 막은 덕분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고추가 장마에도 싱싱함을 달고 빨갛게 익어간다. 콩덩굴이 타고 오른 옥수수는 붉은 수염을 잔뜩 달고 알맹이를 살찌운다. 호박과 참외 잎이 땅을 덮어 멀칭을 하면 꽃은 열매를 키워낸다. 지속가능한 삶, 또는 좋은 삶으로 표현되는 퍼머컬쳐는 땅을 보살피라(care earth), 사람을 보살피라(care people), 공정하게 분배하라(fair share), 영혼을 보살피라(spirit care)는 네가지 윤리원칙으로 자연과 인간의 전일적이면서 통합적인 삶을 지향한다. 퍼머컬쳐는 농사짓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에 기대어 순환하는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이다.

화려한 들꽃 대신 센터피스를 차지한 장작불 덕에 눅눅하고 축축해진 마음들이 되살아났는지 퍼머컬쳐 농부들은 700여 평이나 되는 밭으로 달려가 가지, 호박, 콩, 토마토와 수박, 참외 등을 땄다. “무엇이든 구워줄게”를 준비한 소란은 비로 풀에 빠진 밭을 돌보며 채소와 약초잎을 거둬들인다. 유기농 커피집 주인장은 어느새 솎아낸 당근으로 부침개를 만들었고 멸종저항 당근은 데코의 마침표가 됐다.

멕시코 살사요리사가 기름 냄새 풍기며 허기를 자극하고 장작불에 채소가 익어갈 즈음, 건너편 호밀을 널어둔 원두막 타로점집을 찾은 두사람의 실루엣이 사뭇 진지하다. 아직 미완의 한옥집에는 텐트가 펼쳐지고 수락텃밭 주변 원두막에는 모기장을 장착한 해먹이 걸린다. 수락숲밭에서 가장 번듯한 건물, 교육장에서는 ‘맛뵈기, 원불교 선요가’가 한창이다.

도깨비보따리 나눔장에는 쪽 염색한 양말셋트가 즐비하고, 스포츠웨어, 믹서기, 고데기, 책, 그림달력, 도마 등 탐욕을 자극하는 물건들로 예상밖의 풍성한 장이섰다. 천원부터 시작한 경매로 20여만원의 수익을 얻은 도깨비보따리 주인장은 수익금 전액을 나무심기에 내놓았다.

나눔이 순환되고, 따뜻한 온기가 피어난다. 시베리아온도 38도, 일본은 불바다, 한국은 물바다 생애처음 맛보는 기후재앙에 그래도 이곳은 기댈 희망이 된다. 지천에 널린 박하 잎 띄워 차를 마시고 달빛에 의지해 손톱, 발톱에 봉숭아물 들이며 흰 눈 내리면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설레임이 밤하늘을 가득 채운다.

지난 100년간 인간이 저질러놓은 ‘인과의 지구’를 사는 지혜, 슬기로운 퍼머컬쳐생활에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잡초라도 충분한 풀학교’ 퍼머컬쳐 디자이너 '소란'   출처=원불교환경연대 밴드
 출처=원불교환경연대 밴드
 출처=원불교환경연대 밴드

 

8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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