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교화다] 콘텐츠를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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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교화다] 콘텐츠를 활용하자
  • 허인성 교도
  • 승인 2020.09.15 12:01
  • 호수 1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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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교화다22
콘텐츠가 교화다허인성정릉교당 교도
콘텐츠가 교화다
허인성
정릉교당 교도

잘 만든 콘텐츠는 작성자에게 효자 노릇도 한다. 이름을 알리게도 하고, 금전적인 수익도 가져다주며,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준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점이 있다. 바로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 번 만들어둔 콘텐츠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다. 그 내용과 형식에서도 매력을 발산한다. 주변을 자극하여 더 좋은 콘텐츠를 유도한다. 심지어 작성자 자신에게도 다음 콘텐츠의 발판이 된다. 선한 영향력이 생긴다. 그뿐 아니다. 콘텐츠는 내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도 제 역할을 수행한다. 시간이 지나도 콘텐츠는 향기를 머금고 퍼져나간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콘텐츠 스스로가 나를 대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화 현장에서 끊임없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원불교가 뭐예요? 불교와 뭐가 달라요? 이런 질문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교도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콘텐츠를 만들어본다고 하자. 교단 차원에서 만들 수도 있지만 내 수준에서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만들 수 있다. 물론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완벽하게 하려면? 아마 영원히 못 올릴 것이다. 세상은 완벽하게 정의되어 돌아가지 않는다. 만든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수정하거나 내용을 보충하면 된다.

“용어가 너무 어려워요.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여기까지 발전한 분들이라면 희망적이다. 원불교에 관심이 있어 교리를 접했다는 것 아닌가. 그분들께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자. 그분들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목소리로 설명하면 된다. 한자어가 많아서 힘들다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먼저 쉽게 풀어보고 난 다음 단장과 교무님에게 감정을 받자, 그 순간 공부도 한 단계 올라갈 것이다.

“교리는 좋은데 지키기 어려워요. 편하게 교당 다니고 싶어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깨달음이 늦으면 어떠한가. 영생의 공부인 것을. 오히려 스스로 공부길을 찾을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게 낫다.

“맨날 교화, 교화, 교화 노래를 불러요.” 쉬고 싶어 왔는데 공부하라는 소리만큼 이 말도 은근히 스트레스다. 공부는 언제 하나. 교화하러 교당에 왔나. 필자도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사실 수준에 맞게 하면 된다. 나도 잘 모르는데 남들에게 어떻게 소개까지 하겠나. 나도 귀찮은데 어떻게 남을 오라고 할까. 이런 생각은 공부하고 나면 자연히 풀린다.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설령 안다 해도 교화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이때 해결책이 있다. 내가 하지 말고, 콘텐츠가 하게 하자. 내가 하면 열을 할 것을 콘텐츠가 하면 백, 천, 만 배 열일 할 것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정성을 다해보자.

이제 이 글의 마지막 질문이다. “왜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원불교 없이도 잘 살 수 있는데 왜 원불교에 다녀야 하나요.” 이것은 원불교라는 곳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곳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일 것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도록 하자. 우리가 왜 사는가? 잘 살아가기 위한 길이 있다면 피하겠는가? 어떻게 살아야 나도 잘 살고 남도 잘 살 것인가?

사소한 질문 같으나 끊임없이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게 해야 한다. 해답은 없다. 상대에 따라 답이 다를 뿐. 콘텐츠는 그렇게 만들어져야 하고,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전달돼야 한다. 그렇게 콘텐츠를 활용하자.

 

9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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