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와 회복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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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와 회복적 정의
  • 전철후
  • 승인 2020.10.20 17:06
  • 호수 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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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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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문
전철후
성공회대

모든 종교의 근저에는 비폭력을 바탕으로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평화적 희망을 지니고 있다. 원불교 역시도 시대 상황이 어려울 때 새로운 밝은 세상을 열어가길 염원했다. 특히 <정전> 최초법어 중에서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은 당시의 국제사회가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침탈로 인해 강대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었고, 물질의 자본으로 인해 권력이 독점되면서 계층 간의 심각한 갈등 현상과 신분 차별 등이 빚어지고 있는 시국에 제정된 교법이다. 때문에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은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간에 서로 은혜를 발견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로서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으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

하지만 개인, 사회, 국가가 평화를 바라는 의도와 목적이 동일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강자의 입장에서는 현재 체제와 질서의 유지를 통해서 평화를 말한다면 약자의 입장은 강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적 모순의 해체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려 한다. 강자는 구조적으로 유지되는 폭력을 정당화하려 하고, 약자는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구조적 폭력에 저항해 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러면 강자와 약자가 어떻게 서로가 더 상위의 가치를 지닌 평화를 자리이타로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 구체적인 접근 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는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철폐했던 ‘진실화해위윈회’를 들 수 있다. 종교, 정치사상,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인종차별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포용하면서 폭력 없이 차별을 없애고 공동체 회복에 기여했다. 이는 남아프리카의 토착적 영성운동인 ‘우분투(Ubuntu)’ 정신에 바탕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우분투’ 정신은 남아프리카의 부족과 민족 집단 내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성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우분투와 같은 영성운동이 인종차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의지와 마음 및 감정에 대한 내적인 변화, 즉 내면의 인격 변화를 가져왔다. 가해자의 관점에서 책임의 수용, 사과의 제공, 행동을 바꾸고 보상을 하려는 노력 등과 피해자의 관점에서는 가해자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과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 등의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모두에게 회복과 치유의 영성적 토대를 이뤘다.

이러한 회복적 정의의 과정은 피해자의 피해와 필요를 다루고, 가해자가 그러한 피해를 바로잡는데 책임을 지도록 하며, 피해자와 가해자 및 공동체를 그 절차에 참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회복적 정의는 가해행위에 대한 비난과 처벌을 넘어서서 책임과 치유와 정의를 촉진하는 방법으로 가해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다루려고 시도하면서 잘못된 행위에 대한 모든 접근방식을 통칭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특히 갈등전환과 관련하여 평화를 상위의 가치에 두는 협력적인 접근방식이며 다양한 환경에서 적용될 수 있다. 평화학 연구에서는 회복적 정의의 핵심 가치를 참여, 존중, 정직, 겸손, 연대성, 책임, 권한부여, 희망 등으로 제시한다. 회복적 정의는 가치와 과정이 분리될 수 없다. 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가치이며, 그러한 가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바로 과정이기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는 연민과 치유 및 자비와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강자와 약자 간의 대립과 갈등의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고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길을 제시한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이 적극적인 평화를 창조해가는 회복적 정의의 영성운동으로 자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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