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선에 대한 많은 오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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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선에 대한 많은 오해들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01.14 03:45
  • 호수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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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35
무시선법 15번째 完

우리에게 무시선은 교법 수행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마음공부인들 가운데 실제로 이 무시선법을 닦는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이 교법에 대한 오해가 그야말로 적지 않았던 탓으로 보입니다. 이 오해들을 풀지 않는다면 무시선법은 앞으로도 우리 교전 속에서 이름과 문장으로만 남아 후세에 전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무시선법 시리즈 마지막으로 ‘무시선에 관한 오해’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오해 : “무시선은 수많은 수행법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시선법은 오히려 모든 수행법의 종합판이며 완성판입니다. 만약 이 법이 단지 여러 수행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면, 유독 ‘무시선’ 세 글자를 4대 교리표어와 교리도와 교가 가사에 넣어서 특별히 중시했을 까닭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를 ‘사반공배(事半功倍)’의 수행이라고 칭하고 ‘생사자유와 윤회해탈과 정토극락이 여기서 나온다’고 단언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시선은 수많은 수행법 가운데 그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두 번째 오해: “무시선은 너무 어렵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시선법에 이미 밝혀져 있는 것처럼 이 법은 ‘알고 보면’ 정말 어렵지 않습니다. 이 수행법은 실로 단순해서 머리가 좋고 나쁜 것에 관계가 없고, 학식이 많고 적은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이 법의 근본 뜻을 취해서 아무 때나 마음과 몸으로 행할 뿐입니다. ‘괭이를 든 농부도, 마치를 든 공장도, 주판을 든 점원도, 정사를 잡은 관리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고 밝혔건만, 끝내 믿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서 이 위대한 교법이 사장(死藏)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오해: “무시선은 항상 선을 한다는 것이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입니다. 무시선이라는 이름이 ‘늘 하는 선’이라는 뜻이지만, 뿐만 아니라 ‘무시선법’이라는 명백한 수행법이 있습니다. 이 공부법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단지 ‘늘 선을 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겉만 보고 정말 중요한 알맹이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공부법은 우리 자신과 전 세계 인류를 살리는 진리적 수행의 결정판입니다.


네 번째 오해: “무시선은 정신수양 공부와 작업취사 공부를 잘하자는 것이다.”

아닙니다. 이것은 ‘무시선의 강령’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나온 오해입니다. 무시선은 모든 공부에 가장 근본이 되는 진공묘유의 수행법입니다. 위와 같은 오해가 생기게 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법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무시선 무처선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동정 간 정신이 성성적적 적적성성하여 여의자재(如意自在)하게 하는 살아있는 선법(禪法)이니, 정력(定力)을 얻을 때까지 마음을 멈추고, 혜력(慧力)을 얻을 때까지 생각을 궁굴리고, 계력(戒力)을 얻을 때까지 취사하는 공부를 일분일각도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바르고 빠른 공부길이니라.」 (<대산종사법어> 교리편 17장)

위 내용은 무시선법의 본질과는 어긋난 것이기 때문에, 후대의 수행자들을 위해서 반드시 삭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무시선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잡는 것으로 이 위대한 수행법에 관한 글을 마칩니다. 부디 이 소중한 교법이 세상에 널리 퍼져서 반드시 이 땅에 천여래 만보살이 출현하는 시대가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1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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