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백가중무선인(一百家中無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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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가중무선인(一百家中無善人)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03.09 17:02
  • 호수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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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空卽是色) 39
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교도
화정교당

사방 인근에서 밥 짓는 연기만 부질없이 바라보노라 / 만두와 찐떡은 작년에 이별했고 / 오늘 생각해보며 공연히 군침만 삼킨다 / 생각은 그저 잠깐이요 잦은 탄식이로다 / 백 집 가운데 좋은 사람이 하나 없네 /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 차를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 성을 내는구나. (조주스님, 十二時歌)

삶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일입니다. 불교 선종에서 고불(古佛)이라고 추앙 받던 조주(趙州)스님도 그 당시의 배고픈 일상을 이렇게 시로 남겼습니다. 권승(權僧)이었다면 저렇게 배를 곯지는 않았겠지요. 부적을 써서 팔든, 권력자를 위해 축원기도를 올려주든….

며칠 전 어느 해외 유명가수는 반려견 두 마리를 되찾는 대가로 50만 달러를 내걸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또 반민족 친일파로부터 환수한 재산을 독립유공자 가족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쓸 예정이라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의 크고 작은 일에는 언제나 돈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부조리는 근본적으로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평화와 환경보호운동에 앞장서 실천하고 있는 교단의 한 교무님은 갈수록 더 심해지는 자본주의 풍조를 참으로 가슴 아파합니다. 이제는 늙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어느덧 돈으로 그 친밀도가 정해지는 시대입니다. 

자본주의는 지금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종교 등 어디든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려워진 이들에게 소액이나마 네 번째 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면 나라 곳간이 거덜 난다고 한쪽에서 소리를 높입니다. 국민을 위해서 정치인이 되었다는 부자 정치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려고 나타난 종교에서도, 유례없는 경제 혹한기(酷寒期)에 가지고 있는 여유부동산이라도 처분해서 없는 자들의 아픔을 달래겠다고 하는 종단은 없습니다. 도리어 헌금이 줄어드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종교시설 안에서 엄숙하게 경전을 설하고 교법을 찬송하는 게 불사인지, 헌금으로 이루어진 종교재산으로 빈궁한 이들을 도와 성인의 도를 실천하는 게 진짜 불사(佛事)인지,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본소득’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가진 게 있는 사람들은 베네수엘라, 그리스를 가리키며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국가 부도의 본질은 정부와 사회의 광범위한 부정부패였고, 노르웨이, 스웨덴 등 서유럽 국가들은 이미 자본주의를 합리적으로 수정해서 복지국가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체합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가족 가운데 병들거나 약하거나 무능한 사람이라도 모두 기본적인 혜택을 누립니다. 무능한 부모나 자식이라고 해서 가정에서 의식주를 빼앗아버리거나 집안시설의 이용을 막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기본복지가 집 밖으로만 나가면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충분한 부를 성취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아름답게 기부를 하면 좋겠지만, 집값이 오르면 한 채 더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생각해줄 리가 없습니다. 

능력이든 권력이든 재산이든, 많이 가졌으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복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죄나 복은 일단 지으면 나중에 되돌려 받는다는 진리를 모르기에, 오직 부를 한없이 모아서 제 자식들을 향해 무한 효도를 하려고 합니다.

 

3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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