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섬福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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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섬福島
  • 이태은 교도
  • 승인 2021.03.16 10:05
  • 호수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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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감수성up

 

이태은<br>서울교당 교도<br>나이만큼 나무를 심자 사업단장
이태은
서울교당 교도
나이만큼 나무를 심자 사업단장

‘헉!’

수년째 봐왔던 풍경이지만 이 즈음되면 수소폭발로 돔이 날아가고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장면이 TV화면을 채우는 터라 433차 탈핵순례길에 맞닥뜨린 돔 6기에 숨이 멎는다.

한빛핵발전소 정문에서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정문식당엔 오늘도 한가로이 의자들만 덩그렇게 놓여있다. 세계 어디에도 핵발전소와 마을이 이렇게 가까운 곳은 없다. 마을에는 초등학교까지 있다. 말 그대로 ‘코앞’이다.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일본을 뒤흔들었다. 지진에 이어 발생한 쓰나미는 배와 자동차, 다리와 집까지 통째로 집어 삼켰다. 이 지진과 쓰나미로 15,000명 이상 사망하고 2,000명이상 행방불명됐다. 끔찍한 재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자연재해 이후 핵재앙이 따라왔다. 인재이고 인과였다.

지진 직후 핵발전소의 자동개폐장치가 작동됐지만 방사능 연쇄반응은 단추 하나 누르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발전소의 전원이 꺼진 후에도 원자로 안에서는 높은 열이 발생했다. 연료봉은 원자로를 끈 다음에도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냉각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료봉은 녹기 시작하고 핵분열 연쇄반응은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지진과 쓰나미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외부 전력공급망을 파괴해 버렸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디젤 비상전력공급 장치를 작동했지만 바닷물에 잠겨 무용지물이었다.

뜨거워진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는 점점 줄었고 연료봉은 절반이상 물 밖으로 노출됐다. 연료봉은 갈수록 뜨거워졌고 결국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압력과 방사능이 점점 더 상승하자 방사능 수증기를 외부로 방출시켜야했다. 결국 수소폭발로 지붕일부가 날아가는 장면은 고스란히 TV화면에 잡혔다. 그 후 10년이다.

'복섬(福島)' 후쿠시마는 산과 강, 바다로 둘러싸여 복섬 사람들에게 풍족한 먹거리와 자원을 제공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2011년 3월 11일 전까지는 말이다.

오누마씨는 일 년에 한두 번 방호복을 갖춰 입고 후쿠시마 5·6호기에서 4km 떨어진 고향 후타바 정(읍)을 찾는다. 방사능오염을 염려해 이장도 허락되지 않는 아버지의 산소를 돌보기 위해서다. 후타바는 마을사람들과 발전소 직원들로 꽤 활기찼었다.

후쿠시마 7·8호기 증설이 결정되었던 1988년 초등학교 6학년 이었던 오누마씨가 학교 숙제로 제출한 표어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가 상을 받았다. 이 표어는 마을 중심 입구에 핵발전소 광고간판으로 세워졌다. 간판아래를 지나다닐 때마다 오누마씨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다. 2011년 3월 11일전까지는 말이다.

2011년 이후 한 번씩 고향을 찾을 때마다 오누마씨는 방호복 차림으로 피켓을 들었다. 그의 손에는 ‘밝은’ 대신 ‘파멸’이라는 단어가 들려있었다. 오누마씨는 이 광고판의 존속을 위해 서명운동까지 펼쳤지만 후바타 지방정부에 의해 2015년 철거됐다. 부끄럽기는 했나보다.

오누마씨의 피켓은 예언이다.

‘원자력은 파멸의 에너지’

탈핵 활동가들.
탈핵 활동가들.

 

3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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