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사는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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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사는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었으면"
  • 임경호 기자
  • 승인 2021.03.16 10:00
  • 호수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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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불의 현장│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정책팀장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지났다. 경칩은 완연한 봄이 왔음을 세상에 알리는 절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좀처럼 ‘봄’이 오지 않는다. 기온은 여전히 한 자릿수까지 떨어진다. 코로나19도 2년째 극성이다. 생활반경은 축소됐고 활동은 위축됐다. 그런 이상함이 일상의 함의가된 요즘.

사람들은 동물에게 위로 받는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애정이 동물을 통해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에게 ‘반려’라는 이름을 붙인다. 인간이 명명할 수 있는 단어 중 가장 친근한 이름을 동물에게 붙임으로써 나와 ‘그것’의 관계를 나와 ‘그’의 관계로 끌어올린다. 동물은 우리에게 그 정도로 가까이 왔다.

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도 있었다. 변화는 서서히 다가왔다. 그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시민단체 등에 후원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후원 받는 입장에 섰다. 동물에 대한 애정을 법과 제도 등으로 사회에 구현하기 위한 ‘리얼리스트’들이다.

여기 서울 불광교당에도 리얼리스트가 한 명 있다. 채일연(본명 일택·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 교도가 그 주인공이다. 과거 NGO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우연히 동물권 단체에 발을 들였다. ‘이 땅에 사는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지 어느덧 만 4년이 됐다.

 

케이지 프리·곰 생츄어리 등 동물권↑

그는 지난 4년간 동물권과 관련된 사회 변화의 선봉에 섰다. 국내 기업들이 ‘케이지 프리’를 선언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일조했다. 케이지 프리는 배터리케이지에서 사육하던 산란계를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도록 하는 동물복지 캠페인이다. 2021년 3월 현재 풀무원, 스타벅스 코리아 등이 동참하고 있다. 이들과의 협상을 채 교도가 총괄했다.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되던 곰들이 쉴 수 있도록 환경부에서 생츄어리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웅담 채취용 곰들이 아직도 국내에 400마리 넘게 남아있다”며 “요즘 웅담 수요가 거의 없다 보니 이들이 방치돼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확보한 예산은 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을 건립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정책·해외사례 조사 등 변화 근거 모색

변화에는 많은 자원이 소요된다. 혼자서 노를 저어선 사회라는 배를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함께 노를 저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을 그가 한다. 동물자유연대가 나아갈 방향에 맞는 자료를 생산하고, 생각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도 수집한다. 정책이 발표되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외 사례를 조사해 시사점도 기록한다.

입사 초기에는 다양한 일을 소화했던 그다. 교육과 캠페인 등 필요한 분야의 일을 도맡았다. 현재는 정책과 연구조사 분야로 업무가 세분화 됐다. 과거보다 업역은 좁아졌지만 그는 여전히 바쁜 하루를 살고 있다.

“오전 5시 반쯤 일어나요. 6시 30분에 출근하고요. 나오면 공부를 조금 해요. 업무준비도 하고요. 정해진 근무시간은 오전 8시~오후 5시예요. 하지만 이 시간 안에 일을 모두 처리하기는 버겁거든요. 부서장에겐 이것저것 확인하고 검토하는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에 개인적이거나 밀린 일들은 사람이 없을 때 소화하기도 해요. 대신 퇴근은 5시, 정시 퇴근합니다. (웃음)”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활동 지속 원동력"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하지만 벌레를 잡아도 피로는 남는다. 새벽 출근을 4년째 이어오는 그에게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을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뗐다.

“원동력 등을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었어요. 주어지는 사건이나 현안에 대응하다 보니 정신없이 왔던 것 같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슈가 발생해요. 이런 것들을 콘텐츠로 만들면 일 평균 3~4개 정도가 돼요. 그 업무를 제가 담당했어요. 돌아볼 시간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일들이 상당히 많은 생명들의 삶을 바꾸는 데 관여했다고 생각해요. 사회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이 활동을 계속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채 교도는 사회 변화와 함께 자신도 변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변에 대해서 무감각했던 자신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나 옷, 약 등이 생산되는 과정을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몰랐던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며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는지, 배은(背恩)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했다.
 

 

나와 너, 우리의 변화

그는 동물자유연대에서 일을 시작한 뒤 작은 변화를 실천 중이다. 가정에서 쓰는 달걀을 동물복지란으로 바꾸거나 동물이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된 제품보다 신소재 의류를 구입하는 식이다. 소비 자체를 줄여 불필요한 환경 파괴를 방지하려는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다. 채 교도는 “신소재 의류를 이용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플라스틱 소재라서 배출 문제 등이 생긴다”며 “해마다 목표를 잡고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에 대한 바람은 채 교도만의 ‘단꿈’이 아니다.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늘었다. 이런 변화는 동물자유연대에 대한 후원으로 연결됐다. 그가 단체에 몸을 담은 4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후원 규모가 한층 커졌다. 그 덕에 조직도 전보다 성장했다. 그는 후원의 가치를 ‘채찍’에 비유했다.

“후원금이 늘어나는 건 사회적 책무를 더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 사회에 이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요구란 말이죠. 우리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채찍이라고 봐요.”


변화를 향한 움직임, 원불교 외연 확장에 기여할 것

채 교도가 속한 동물자유연대는 국내에서 가장 큰 동물권 단체 중 한 곳이다. 인간으로부터 고통 받는 동물의 수와 종을 줄이자는 지향점을 가지고 변화를 종용하고 있다. 예컨대 1명의 비건(채식주의자)을 만드는 것보다 1,000명이 하루라도 채식을 할 수 있는 의식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채 교도는 이를 ‘실질적 변화’라고 이름 붙였다.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열망은 누구나 품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사회 변화 운동의 주체가 반드시 ‘단체’의 형태를 띨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이 변했고, 조직화 되지 않은 느슨한 연대 조직들도 다수 존재한다”며 “기존 단체들이 하지 못했던 메시지를 사회에 전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역할을 그들이 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교단 내부의 활동도 장려했다. 채 교도는 “동물 이슈는 원불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며 활동 근거나 필요성도 있는 편”이라며 “뜻이 있는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활동 공간을 내어주거나 교단 내에서 실천해도 충분하니 어렵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단 변화나 작은 캠페인 등을 교단에 권했다.“(사회 변화를 바란다면) 굳이 우리 안의 사람들, 자원만으로 할 필요는 없다”며 “원불교는 플랫폼만 되어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플랫폼은 교도들, 시민들이 모여들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내용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원불교의 외연적 확장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3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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