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통일의 씨앗 … 북한이탈주민에게 방 한 칸 내어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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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통일의 씨앗 … 북한이탈주민에게 방 한 칸 내어 줄 수 있는가?
  • 강법진 편집장
  • 승인 2021.03.23 20:54
  • 호수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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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취임 1년
대담자 고선아 한겨레고등학교 교사
정인성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지난 3월 12일 취임 1년을 맞아 본지와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그가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서울 마포구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실에서 가졌다. 

 

탈북민은 두 가지 ‘고’로 힘들어한다.

하나는 괴로울 고(苦)이고, 다른 하나는 외로울 고(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편견에 맞서야 하는 외로운 투쟁을 견뎌야 한다.

이들에게 재단은 언제나 위안을 주는 어머니의 품이 되려고 한다.

 

지난 1년 코로나19가 가져온 생활고와 고립감은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에게 더 가혹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에 속한 이들은 조그만 위기상황에도 그 체감온도가 몇 배가 된다. 

한국사회도 어느새 탈북민 3만 명 시대다. 탈북민의 생활안정지원과 취업·창업 등을 돕는 남북하나재단은 그들이 최대한 초기정착 과정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돕고 있다. 그럼에도 재단의 손이 닿지 않는 탈북민이 있다. 고국을 떠나 어렵게 한국사회에 발을 디뎠지만 사회문화도, 빈부의 격차도 그들이 감당하기엔 아직 한국사회가 녹록치 않은 탓이다. 특히, 그들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2010년 설립된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 ‘남북하나재단’(이하 재단)이 설립 10주년이 되던 지난해 3월, 정인성(이하 정) 원불교 특임통일부원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돌아보면 코로나19는 사회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해 왔다. 정 이사장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상 위에는 사각지대가 없지만 현장에는 있다”는 취임사로 첫발을 뗀 그는 지난 1년의 소회를 “재단의 비전과 역할을 새롭게 설정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만큼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던 2020년 첫해를 보내고 올해는 탈북민 취약계층 전수파악을 통해 현장의 사각지대를 최소화 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초심은 임기 동안 견지해 나가겠다는 그에게 대담을 요청했다. 대담자는 남한사회에 정착한 지 올해로 16년째 되는 학)전인학원 한겨레고등학교 고선아(이하 고) 선생이다. 사회는 본지 강법진 편집장이 맡았다. 

 

 

취임 1년을 축하한다. 취임사에서 밝힌 ‘현장을 자주 찾아가겠다’는 포부는 얼마나 실현했는가? 
정_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탈북민들의 정착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재단에서 창업을 지원했던 옷수선 가게에서는 주인의 행복한 미소가 인상 깊었고, 비닐하우스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던 한 탈북민은 스마트팜 농법을 도입해 지역 학교에 공급하고 있었다. 물론 취약계층이 더 많이 있지만 이렇게 희망을 만들어가는 현장들이 있어 재단의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

 

북한이탈청소년들을 교육하는 한겨레중·고등학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고_ 일상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와 살고 있었지만, 교육부 방침에 따라 개학은 5월 20일경에야 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개교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았던 사회통합프로그램(체험학습)을 시행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올해 졸업을 맞이한 학생들에게는 너무 미안했다. 가장 성대하게 치러졌을 졸업식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아쉬움이 많았다. 

 

현장에서 만나는 탈북민(청소년)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는 어떤가?
정_ 지난해 탈북민 실태조사를 한 결과, 남한사회 만족도가 역대 최고치(76.4%)였다. 반면 탈북민을 바라보는 언론의 부정적 보도는 전보다 약 7% 증가했다.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언론에서 탈북민 인권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다뤄줬으면 한다.  

고_ 한국은 물질은 풍부하나 개인의 삶을 살아내기는 정말 힘든 사회다. 그나마 나는 2005년에 한국에 들어와 약 2개월간 하나원에 있다가 바로 학교라는 울타리에 들어와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권유로 북한을 탈출해 왔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느끼는 빈부의 격차가 매우 크다. 때문에 쉽게 돈의 유혹에 빠진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나는 한국사회의 주류로 진입하려면 돈이 아닌 지식과 학문을 갖추라고 말한다. 물론 현실의 벽은 높지만 돈 많은 정신적 가난뱅이보다는 낫다.

 

이사장으로 취임 전에도 남북민간협력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정_ 아무래도 공공기관이다 보니 매우 조심스럽고 제약이 따른다. 그 가운데 여기 와서 느낀 점은 ‘우리 정부가 탈북민 지원’을 정말 잘해준다는 점이다. 실례로 심리 상담부터 방과 후 학습, 취업지원, 영농지원, 사회통합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탈북민을 돕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 재단이나 탈북민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정_ 탈북민들은 영세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등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다. 코로나19로 피해가 큰 집단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재단도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아 예정했던 사업을 연기 또는 축소했다. 

16년 전, 북한이탈주민으로 한국사회에 정착을 시작한 고선아 한겨레고등학교 교사.

 

극소수이지만 탈북민 가운데 전문인재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지원을 좀 더 촘촘하게 준비해 주면 좋겠다.

더불어 탈북민을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 먼저 온 탈북민들이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회를 제공해 줬으면 한다.

지금 당장 일하기 힘들다고 단정 짓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먼저 살아본다는 마음으로 개선해 줬으면 한다. 

탈북민들이 정착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점은 무엇인가? 
고_ 최근 남북하나재단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만 있었다. 규모도 협소하고 하는 역할도 상담센터 정도의 일이었다. 지금의 재단은 탈북민들의 친정과도 같다. 사실 탈북민이라면 자신이 목적하고자 하는 일을 재단과 협력하면 큰 도움을 받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극소수이지만 탈북민 가운데 전문인재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지원을 좀 더 촘촘하게 준비해 주면 좋겠다. 더불어 탈북민을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 먼저 온 탈북민들이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회를 제공해 줬으면 한다. 탈북민들은 먼저 온 지인이나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인다. 재단의 실무팀에도 전문지식을 갖춘 탈북민 인재들이 영입되면 좋겠고 지금 당장 일하기 힘들다고 단정 짓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먼저 살아본다는 마음으로 개선해 줬으면 한다. 

 

재단의 역점사업과 이사장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는?
정_ 정착지원 현장을 가보면 탈북민들이 갑자기 거주지역을 옮겨 연락이 두절된 사람들이 있다. 재단의 보호 틀에서 벗어나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줄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탈북민 취약계층을 전수파악해 재단의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는 개인 지원이었는데, 앞으로는 ‘가족 지원’으로 돌리고자 한다. 현재 탈북민 가정을 보면 북한 출생 자녀, 제3국 출생 자녀, 한국 출생 자녀가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현재 정책으로는 북한 출생 자녀만 지원이 가능하다. 가족 내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가족 단위 지원을 할 생각이다. 대신 중복지원이나 과다 수혜로 예산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지역사회 통합서비스 차원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지난해 재단의 변화를 준 게 있다면 기존에는 생활안정부, 교육지원부, 자립지원부가 개별적으로 움직였는데 이제는 통합서비스체제로 전환해 교육과 취업, 자립이 서로 연결되게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탈북민에 대한 인식 개선이 부족하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정_ 탈북민에 대한 인식 개선은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탈북민은 개개인이 탈북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고, 남한 국민들은 막연한 편견을 내려놓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을 위한 연습이다. 재단은 성공적인 사회통합을 위해 지역 내 다양한 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마곡 통합문화센터 설립도 그중 하나다. 또한 남북주민 인식개선을 위해 ‘남북소통이야기’라는 사회통합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확산해 가고 있다. 

 

 

재단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북한이 1994년부터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

1997~2000년까지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때 학교 교육을 받아야 했던 세대들이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았다.

이들을 위한 방문교사제도라든가, 문해교육을 시켜줬으면 한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 정착할 때 재단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고_ 졸업을 하면 크게 취업과 진학 두 가지 길로 나뉜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길게는 대학원까지 공부할 수 있게 재단에서 장학금 제도를 탄탄하게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보다는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거나, 돈을 벌어야 할 다른 일이 생겨 대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 것은 취업에 뛰어든 청년들이다. 이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대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취업이 잘 안 된다.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현실이긴 하나 탈북민이 느끼는 체감도는 더 크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북한이 1994년부터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 1997~2000년까지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때 학교 교육을 받아야 했던 세대들이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았다. 거의 무학이거나 한글을 잘 모른다. 대략 27세~35세 사이의 탈북청년들이다. 재단이 이들을 위한 방문교사제도라든가, 탈북민 NK교사를 활용한 문해교육을 시켜줬으면 한다.  

 

한국사회 정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고_ 남한은 내가 두 번째로 태어난 곳이다. 그만큼 두 사회는 많이 다르다. 나는 북한에서 대학 교수직을 했다. 북한은 대학원 학위 취득만 해도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한국사회에서 탈북민은 학위가 있어도 의사와 교사 자격조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최근 5~6년 사이에 그 문이 열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15년을 돌아왔다. 지난 15년간 방송통신대를 비롯해 대학교 학사과정 3개 대학, 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도 자격을얻지 못해 현재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내가 교사자격을 취득하면 탈북민으로서는 첫 번째 케이스가 될 것 같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왔기에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원불교가 없었더라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사회 정착을 시작하는 탈북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_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하면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방인이란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이 땅의 주인으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탈북민, 탈북청소년들에게 재단 차원에서 도움이 될 조언이 있다면?
정_ 탈북민은 두 가지 ‘고’로 힘들어한다. 하나는 괴로울 고(苦)이고, 다른 하나는 외로울 고(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편견에 맞서야 하는 외로운 투쟁을 견뎌야 한다. 이들에게 재단은 언제나 같은 편에서 힘과 위안을 주는 어머니의 품이 되려고 한다. 언제든 기대고 싶을 때 찾아와 달라. 

 

 

힘들 때면 어떻게 극복해 가나?
정_ 재단에 처음 왔을 때, 직원이 161명인데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매달릴 데가 법신불 사은밖에 없었다. 그만큼 기도가 간절해졌고, 더 자주 올리게 된다.  

 

원불교 통일교화는 어디쯤 와 있는 것 같은가?
정_ 교정원에 원불교통일위원회를 발족하자고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마음에 빚이 크다. 처음 제안에는 출가위주의 위원회가 아니라 재가 통일전문가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전문가그룹을 구성하고자 한 것이다. 원불교는 대한민국 어느 종교보다 통일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금강이 현세계하니 조선이 갱조선’이라고 했다. 그 조선의 모습은 분단된 남북이 아니라 통일된 한반도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돼야 한다. 정산종사는 ‘남북 통일과 세계 평화는 무위이화로 될 것’이니 우리 마음에 미움이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대산종사는 이북사람을 위해 각자가 밥숟가락, 방 한 칸 마련해 두자고 했는데, 꼭 북한에 지원을 해줘야만 통일사업이 아니고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을 위해 밥숟가락, 방 한 칸 내어주는 것도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남북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때는 준비기로 알고 교도들에게 통일의식을 심어주자. 하나 제안하자면 통일 주간을 정해 그때는 기도 정진과 통일교육과 보은활동을 하면서 미래 희망을 준비해 갔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통일관은?
고_
한겨레중·고등학교는 원불교 재가출가 교도들의 통일의 씨앗, 한 평 사기 운동을 기반으로 설립한 학교다. 이제는 학교가 원불교에 보은을 해야 한다. 나는 원불교를 만나 ‘내가 통일의 일원’이란 믿음을 갖게 됐다. 그처럼 탈북민들이 정신의 스승을 만났으면 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좌산상사님을 뵌다. 어느 날은 ‘통일 대도’라는 법문을 주셨다. 통일로 가는 길에는 여섯 단계가 있는데 대해원-대사면-대화해-대수용-대협력-대합의라 했다. 굉장히 와 닿았다.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서로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통일에 방법은 다양하지만 평화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재단은 탈북민에게 친정과도 같다. 재단이 소통의 물꼬를 잘 열어줬으면 한다. 

정_ 교단에 아쉬운 점은 한겨레중·고등학교 설립한 것으로 탈북민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한국사회에 탈북민이 3만 4천여 명이다.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고 교단의 정책을 펴야 한다. 북에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탈북민들을 위해 방 한 칸 내어주는 것도 스승님의 경륜을 실현하는 길이다. 
 

3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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