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백지혈인은 전설로 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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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백지혈인은 전설로 돌려야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03.24 17:20
  • 호수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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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교도
화정교당

 

우리는 이제라도 이 백지혈인의 이적을

지난 시대 교단창립 초창기의 전설로만 남겨둬야 합니다.

법인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면 할수록

도리어 우리 정법의 국내외 교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장명등(長明燈)이란 바르게 깨닫는 마음이니, 깨달음의 등불을 켜서 모든 무명의 어두움을 부순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부처님의 방편을 알지 못하고 깨기름을 태워서 밝히는 것으로 아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꽃을 뿌린다는 것도 정법의 공덕꽃을 널리 설하여 유정들을 유익되게 함으로써 장엄을 베푼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고운 꽃을 꺾고 잘라서 뿌리는 것으로 아니, 계행을 지키는 자가 생명을 손상하면서 어떤 복을 구할 수 있겠는가?」 (〈達磨觀心論〉)

원불교 교전에는 원기4년 8월에 아홉 분 선진의 정성이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으로 나타나 우리 회상이 법계의 인증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사전에 보면 법계란 진리의 세계를 말하며, 진여법계, 청정법계 또는 허공법계라고 하는데, 더 쉽게 말하면 우리들 중생 각자의 자성본원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법계의 인증이란 우리 본래의 성품과 부합된다는 뜻으로써, 그다지 신비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무언가 신령스럽고 초월적인 계시로 보고, 우리 회상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실로써 지금까지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백지혈인의 이적을, 현재 미주와 유럽대륙을 휩쓸고 있는 젊고 지성적인 불자들에게까지 납득시킬 수가 있을까요? 이렇게 백지혈인을 계속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한, 세계인을 향해서 우리 스스로가 비진리적 종교임을 선언하는 셈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라도 이 백지혈인의 이적을 지난 시대 교단창립 초창기의 전설로만 남겨둬야 합니다. 법인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면 할수록 도리어 우리 정법의 국내외 교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정전> 법위등급에 나와 있듯이, 대각여래위는 중생교화를 위해서 자유자재로 방편을 쓰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법위입니다. 즉 여래위는 “천만 방편으로 교화하되 교화 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바뀌어 과학이 일상적 생활이 된 현대에는 백지혈인을 교단 초기의 ‘교화방편’으로 남겨둬도 그것이 교조를 향한 불경이 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교법을 시대화 하지 못하는 답답한 우리의 현실이 교조의 뜻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소태산께서 다시 오신다면 지금 같은 과학문명시대에 저 백지혈인의 이적을 역사적 사실로써 강조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시대는 과거 수많은 이적들이 물리학의 발전으로 그 진실이 밝혀지고 있고, 초등학생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배우고 미신과 사실을 구분할 만큼 이미 과학적 사고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진리계의 뜻으로 인주 없이 붉은 지문이 찍혔다고 믿는 것이 정말 진리적 신앙이며, 우리의 일원상 신앙일까요?

우리 교법에 비추어보면, 아무리 지극한 기도라 할지라도 그에 따른 실다운 행위가 없으면 그 결과가 사실적으로 나투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적이고 사실적 불공이라야 인과의 법칙에 의해 현상계에서 그 열매를 맺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훈련을 교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서양에서는 예수부활이라는 초월적 믿음에서 깨어나 참 자아를 발견하는 실지공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백 년 전에 진리적 종교를 선포한 원불교는 아직도 백지혈인이라는 이적을 사실로써 신앙합니다. 예수부활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부정하는 행위이고, 백지혈인을 믿지 않으면 소태산 대종사를 부정하는 것일까요?

이제는 우리의 진리적 교법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도, 앞으로 오는 후진들이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수행으로 참다운 부처의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 교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실천해야 합니다. 진실로 우리는 지금 시대에 많이 뒤처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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