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은 자성의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나니 - 참회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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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은 자성의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나니 - 참회문③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06.12 01:09
  • 호수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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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 43
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교도
화정교당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라 마음이 멸함을 따라 반드시 없어질 것이며, 업은 본래 무명(無明)인지라 자성의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나니, 죄고에 신음하는 사람들이여! 어찌 이 문에 들지 아니하리요.」

죄는 마음이 대상(경계)에 끌리어 주착함으로써 일어납니다. 만약 우리 마음이 아무 데도 주착하지 않는다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안팎으로 머무는 곳이 없어서 상(相)이 없는 마음, 망상 분별이 모두 사라져서 텅 빈 마음을 가리켜 ‘마음이 멸하였다’라고 합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은 본디 이와 같은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심지(心地)라고 합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에 심지(요란함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고)는 그름이 없다고 하였는데, 우리의 마음에 그름이 생기게 되는 까닭은 저 대상(경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마음이 대상을 좇아서(경계를 따라) 주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분별 망상으로 경계(대상)에 주착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중생도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가령 우리의 마음을 나무라고 한다면, 죄라는 것은 이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이 나무가 사라진다면 여기에 달라붙어 있던 매미도 더는 있을 곳이 없습니다. 마음이 사라지면(마음이 텅 비면) 죄 또한 사라진다는 것은 위와 같은 의미입니다. 나무가 베어지면 온갖 벌레들이 거기에 머물지 못하는 것처럼, 죄는 마음이 멸함을 따라서 저절로 없어집니다.

이어서 「업은 본래 무명(無明)인지라 자성의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업(業)이란 중생 각자가 지은, 함[作爲]이 있는 모든 행위를 말하며, 이것은 무명에서 온 것입니다. 업(karma)은 원래 행위를 뜻한다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마음이 지은 일체의 상(相) 있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대상(경계)을 향해 끝없이 분별하고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중생은 그야말로 한순간도 업(선업과 악업)을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각자의 자성은 ‘공원정(空圓正)’으로 갖춰져 있어서 이 자리에는 분별과 집착은 물론, 무명의 그림자조차 머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성의 혜광이 드러나서 우리 마음이 일체의 모양(相)과 착(着)을 여의게 되면, 업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업은 무명의 소산(所産)으로, 그 자체가 무자성(無自性: 근본이 없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나무로 비유하자면,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려서 지나가는 사람을 후려쳤다고 해도 그 나무는 아무런 업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업이란 자성의 혜광을 따라 없어지니, 그러므로 공적영지의 광명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 부처님은 온종일 육근을 사용하지만 조금도 업을 짓지 않아서 윤회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6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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