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조요경] 경계마다 공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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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요경] 경계마다 공부거리
  • 박세웅 교무
  • 승인 2021.07.04 23:26
  • 호수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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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요경 다시읽기7
박세웅(성호) HK교수<br>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박세웅(성호) HK교수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어느 날 『대산종사법어』를 읽는데 정산종사께서 “일체생령을 제도하기 위해서라면 너희 집 머슴도 되고 부모·형제·자식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노라”라고 말씀했다는 법문을 보게 됐다. 당시에는 ‘정산종사님 같은 분이라면 한없이 높은 스승의 자리에 계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셔야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심지어 머슴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시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일까?’ 하며 의심하게 되었다.

이후 한참 동안 그 의심을 놓고 지내다가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제생의세의 간절한 서원과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해 ‘대하는 경계마다’ 어떠한 심법을 써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앞서 『금강경』 6장을 공부하면서, 실다운 믿음이 세워진 사람은 스스로가 구천에 사무치는 정성으로 지계수복(持戒修福)의 적공을 했기 때문이지, 결코 아무렇게나 믿음이 세워진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적공을 했을까? 이에 대해 부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 서너 다섯 부처에만 선근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무량 천만 부처의 처소에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금강경』의 글귀를 듣고는 바로 한 생각에 청정한 신심까지도 낼 수 있는 것이다. (當知하라 是人은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에 而種善根이라 已於無量千萬佛所에 種諸善根하야 聞是章句하고 乃至一念生淨信者니라)” 결국 실다운 믿음이 세워진 사람은 삼세의 모든 부처에게 불공을 드리고 선근을 심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대산종사는 『금강경』 6장의 대의를 ‘여래께서 세세생생 삼세 모든 부처님과 심심상련(心心相連) 하신 심법을 보이심’이라고 말씀한다.

좌산상사는 이에 대한 의미를 넓혀서 “일불이불, 천만불소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계를 만나든지간에 그 대상에 불공을 드리고 그 경계에 선근을 심었다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남녀노소·선악귀천·원근친소를 막론하고 어떠한 대상을 대할지라도 선근을 심고, 시비이해의 모든 일이며 순역의 모든 경계 등에서도 전부 선근을 심으면서 스스로 인격을 단련했음을 가리킨다.

순경에서는 누구나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도 역경을 맞이하면 사소한 것에 걸려서 한없이 무너지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때는 감사한 마음을 갖다가도 혹 나를 해코지하거나 억울하게 하면 금방 원망의 마음을 갖게 된다. 결국, 무량천만 부처의 처소에 선근을 심었다는 것은 내가 마주하는 경계가 아무리 바뀔지라도 그것을 대하는 심법이 끝까지 변하지 않고 선근을 심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야부(冶部)는 “쇠부처는 용광로를 건너가지 못하고 나무부처는 불을 건너가지 못하고 진흙부처는 물을 건너가지 못한다”라고 말씀한다. 오직 참 부처라야 건너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나는 어디를 건너지 못하고 있는가?’를 마음 깊이 살펴볼 일이다.

부처는 모든 경계마다 공부거리로 삼아 선근을 심으라는 말씀에 그치지 않고 한 가지 더 주의를 준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선근을 심는 것은 진리가 다 보고 다 알고 있으므로 그 결과에 대해서는 계교하지 말고, 선근을 심는 그 마음 가운데 사상(四相)과 법상(法相)뿐만 아니라 비법상(非法相)마저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 가운데 하나라도 상을 취하게 되면 그것을 따라 나머지 다른 상들도 따라오는 속성이 있다.

이 ‘상’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상이든 나쁜 상이든 가릴 것이 없다. ‘나는 상이 다 떨어졌다’라고 여기는 상도 상[法相]이요, ‘나는 상이 다 떨어졌다고 여기는 상마저도 없다’라는 상도 상[非法相]이다. 놓고 놓아 더는 놓을 것도 없는 이 자리에 바탕을 둬야 경계마다 선근도 과불급한 바가 없이 시중(時中)에 맞게 심어져서 결국 무량복덕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공부는 흔적 없이 실속 있게, 일은 상없이 실적 있게.” (좌산상사)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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