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苦도 고가 아니요, 죄罪도 죄가 아니다’ - 참회문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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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苦도 고가 아니요, 죄罪도 죄가 아니다’ - 참회문 ⑨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09.08 01:11
  • 호수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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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 49
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이러한 사람은 천만 죄고가 더운물에 얼음 녹듯하여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니며,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진대지가 이 도량이요, 진대지가 이 정토라 내외 중간에 털끝만한 죄상(罪相)도 찾아볼 수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불조의 참회요, 대승의 참회라 이 지경에 이르러야 가히 죄업을 마쳤다 하리라.」

이와 같은 대자유와 해탈을 이룬 사람의 경지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는 것입니다. 과거 수많은 겁(劫)에 걸쳐 죄업이 쌓였다고 할지라도, 모든 죄고가 마치 끓는 물에 얼음 녹듯이 해서, 소위 괴롭다 하는 것도 실은 괴로움이 아니고, 죄라고 하는 것도 실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죄와 복, 선과 악, 즐거움과 괴로움 등을 서로 떼어서 일체 경계를 분별지로 바라보는 중생의 견지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모든 상대처가 끊어져서 둘이 아닌 우리 성품의 지혜 광명으로 보는 세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대상은, 본디 선악 시비 귀천 따위로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우리 각자의 마음이 경계를 취해서 그렇게 스스로 정한 것입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차도 위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갑니다. 길을 가는 사람은 그 차를 보면서 분별심을 내기도 하고 혹은 안 내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이라거나, 평소 갖고 싶어하던 모델이라거나, 반대로 자기 마음에 안 든다거나, 또는 가령 보기에 더러운 차라면, 바라보는 사람이 분별심과 주착심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눈에 모양, 색깔 등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어서, 좋아할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면, 그 차가 지나가든 말든 아무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보면서도 거기에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상에 착(着)을 두지 않을 때는 마음이 스스로 깨끗하고 고요합니다. 좋다, 혹은 싫다 하는 상대처(相對處: 둘로 나뉜 자리)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고락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죄니 복이니 하며 마음이 분별하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일체의 상(相)을 멀리 떠나있는 부처님의 마음이라면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 같은 부처님의 경지를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진대지(盡大地)가 이 도량이요, 진대지가 이 정토」라고 하였습니다. 성품의 지혜광명이 늘 안팎을 비추어서 온 세상이 그대로 진리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온 사바세계가 그대로 법계입니다. 하나하나가 다 부처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의 안과 밖 그리고 그 중간 어디에도 털끝만한 죄의 모습[罪相]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죄의 모습뿐만 없는 게 아닙니다. 실로 일체의 상(相)이 없어서, 마음도 없고 경계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습니다. 속박도 없으며 해탈도 또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완전한 부처와 조사의 참회요, 일체중생을 모두 건지는 참회라고 하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죄업을 모두 마쳤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9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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