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교법을 믿고, 대중을 믿고 두려움 없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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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담] 교법을 믿고, 대중을 믿고 두려움 없이 나가자
  • 강법진 편집장
  • 승인 2021.09.29 12:07
  • 호수 12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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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담┃교단을 새롭게 ‘교법의 시대화’
교단을 새롭게 하기 위한 '교법의 시대화'를 주제로 허인성, 오민웅 교도와 함께 대담을 나눴다. 대담은 온라인 줌으로 진행했다. 

 

교단은 지난 5개월간 극심한 성장통을 겪었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긴긴 여정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인들에게 ‘변해야 산다’는 대명제를 안겼다. 교단도 더 물러서거나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길에 서 있다. 교단 3대 말을 마무리하고 4대를 여는 이 시점이 결코 우연은 아닐 터, 시절인연을 따라 파생된 이 변화의 바람을 어디로 돌릴 것인가. 두 명의 패널을 모시고 교단을 새롭게 할 ‘교법의 시대화’의 방향을 토론해 봤다.

 

패널에는 15년 동안 수위단회 총무법제상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오민웅 교도(변호사·원남교당)와 오랫동안 교단의 콘텐츠/디지털교화에 목소리를 높여온 허인성 교도(정릉교당)를 모셨다. 사회는 본사 강법진 편집장이 맡아 9월 16일 온라인 줌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코로나19가 앞당긴 원불교의 미래 교화 방향을 주제로 한 기획대담은 간헐적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코로나19 시대의 뉴노멀이란?

허_ 코로나19 시대의 뉴노멀은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줌 미팅을 하고 SNS로 만나는 모든 일이 메타버스 세계이고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이 더 확장됐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력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자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오_ 비대면 화상회의를 누구나 할 수 있어서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코로나19 시대가 지나더라도 언택트 환경은 일상화될 것이다. 반면, 언택트 시대에 오히려 더 만나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환경문제도 전 지구적, 전 세계적 문제로 바라보게 됐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오_ 대종사 당대에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화 됐지만 산업화도 시작된 시기이다. 대종사의 개교표어는 그 시대만 본 것이 아니라 먼 미래까지 내다보았다.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었지만 동시에 메타버스상에서도 경제 문제, 범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는 물질문명의 발달 속도에 정신문명이 따라가지 못하면 훨씬 더 위험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허_ 대종사 당시에 없었던 인터넷은 인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이 물질개벽의 결과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점도 많이 발생한다. 대종사는 물질로 인한 요란하고 어리석고 글러지는 정신을 정신개벽을 통해 인류가 나아가도록 길을 가르쳐줬다. 그 길이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다.

 

종교 위기라고 하지만 원불교의 희망을 말한다면?

오_ 나에게도 원불교는 희망이다. 대종사의 교법은 영육쌍전이다. 물질을 선용하되 물질에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중도행을 하자고 했다. 그러니 물질이 인간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물질을 선용하는 법을 교법으로 밝혀 줬기 때문이다.

허_ 원불교는 기복종교가 아니라 후천시대의 생활종교다. 선천시대에는 몇몇 깨친 지도자에 의해 세상이 움직였다면, 후천시대는 누구나 깨치고 살아가는 시대다. 인생의 요도를 밝혀 일원상의 진리가 어떻게 세상에 드러나는지, 보은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방법을 제시한 곳이 원불교라고 본다.

 

후천개벽시대의 종교, 원불교가 우선적으로 혁신해야 할 점은?

허_ 첫째, 일원회상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교단은 출가 중심으로 많이 움직여 왔다. 출가는 지도하는 사람, 재가는 후원하고 지도받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의견을 내도 반영이 잘 안 됐다. 재가출가 평등 교단이 안 된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굉장히 큰 축을 잃어버린 것이다. 둘째, 대종사는 혜안을 가지고 정신개벽으로 인류에 메시지를 던져 줬는데 지금 우리를 보면 미래 시대를 내다보고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방식으로 수십 년을 교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건축불사다. 정책은 미래교화인데 방법은 과거교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재 불사를 해야 한다. 셋째는 공화제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공사라는 제도 뒤에 숨어 아마추어리즘이 심하다. 프로답지 못하다. “좋은 뜻으로 결정했지만 안 됐어, 다같이 결정했으니 개인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돼”. 이렇게 되니 점점 실수가 잦아지고, 가난한 교단은 계속 가난해진다. 예를 들어 사업을 잘하려면 사업 잘하는 사람을 영입해야 하는데 출가만으로 잘해보려고 한다. 출가의 정성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려 있다고 믿는다. 굉장히 뒤처진 관행이다. 어떻게 프로답게 사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수위단원을 누구를

뽑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어떤 분이 되든지

그 자리에 맞게 역할 할 수 있게

지원해 주고 제도와 정책을 구비해야 한다.

구조 개선 없는 인적 쇄신만으로는 근본 해결책이 안된다.

 

수위단회 총무법제상임위 전문위원으로서 바라본 교단 혁신의 방향은?

오_ 수위단원 전문위원을 15년째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열심히 했는데 논의했던 것들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논의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대종사는 이 법대로만 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밝혀 줬는데 교도들은 이 법이 어렵다고 다른 수행처를 찾아다닌다. 왜 그럴까.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다. 교단을 움직여가는 시스템이 이 시대에 안 맞다. 한 예로 최고 지도자는 현장실무자와 장벽 없이 미팅할 줄도 알아야 한다. 기업은 생존이기 때문에 리더의 결정이 조금만 늦춰지면 바로 뒤처진다. 시대를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빠르다. 반면 교단은 과거의 시스템으로 운영하다 보니 논의만 많이 하고 실제로 실행이 잘 안 된다. 시대를 읽는 지도자가 시대에 맞는 시스템으로 빨리 바꿔가야 한다.

 

최고결의기관인 수위단회의 기능이 너무 많고 책임이 무겁다.

오_ 교단에서 법률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저도 법률 자문을 많이 해드렸다. 그때 느낀 것은 제대로 된 자문위원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계에 부딪힌다. 비근한 예로 수위단회 전문위원회가 있는데 잘 활용하지 못한다. 수위단원들은 여러 가지 직책을 겸하고 있다. 그 직책을 수행하기도 바쁜데, 격월로 열리는 수위단회에 참석해서 교단의 법안,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결의기관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무리다. 필연적으로 이번 (새 전서 폐기) 사태가 발생할 구조적 모순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책임의식은 약할 것이다. 개인이 특별히 잘못했다기보다는 구조 자체로부터 발생한 측면이 강한데 왜 사퇴해야 하냐고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수위단원들은 전문영역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면 재가인력을 활용해 합력해야 한다. 현재는 전문위원이 1년에 한두 가지 의제를 가지고 발표하는 정도에 그친다. 지금은 수위단원을 누구를 뽑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어떤 분이 되든지 그 자리에 맞게 역할 할 수 있게 지원해 주고 제도와 정책을 구비해야 한다. 구조 개선 없는 인적 쇄신만으로는 근본 해결책이 안된다.

허_ 교무들은 도학 계통 전문가이고, 교법을 생활화하는 분들이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교법을 생활화하지 못한다. 교법을 생활화한다는 것은 삼학팔조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관리할 때 계획을 세우고, 원가를 뽑고, 인력을 배치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더라도 이것의 목표는 ‘실패하지 않는’ 프로젝트다.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교법대로 일하면 성공할 거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교법대로 하면 크게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법대로 잘 안 하니까 실패도 많다. 일에도 사리연구에 바탕해 작업취사를 해야 한다. 나보다 법 높은 스승님 말씀이라도 문제점`을 말씀드리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말씀만 받들려고 한다. 수위단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책임과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 상호 보완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하며,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많은 견제장치라든지 자문기구라든지, 지원조직을 만들어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한 번에 안 된다. 때문에 보완해 가고 또 보완해 가는 것이 작업취사로서 사리연구를 해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감찰원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 일을 못 하는 것도 부정이다.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부정이 일어난다.

 

최고결의기관으로서 수위단회의 위상을 갖추려면?

오_ 〈교헌〉에 보면 우리 교단은 공화제도와 이단치교로 운영이 된다. 그렇다 보니, 최고결의기관이자 최상위 교화단인 수위단회에 모든 권한과 책임이 몰리게 돼 있다. 회의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열린다. 그러면 그날 올라온 안건은 세밀하게 검토할 시간도 없이 대체로 통과시킨다. 정책 안은 교정원 행정부서에서 만드는데 책임은 수위단원에게 묻는다. 게다가 수위단회는 공부와 교화보다는 교단의 사업에 더 치우쳐 있다. 사회적으로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젠더·차별금지법·난민 문제 등) 교리적으로 어떻게 해석해 내고 방향을 정할 것인가를 논의하지 않는다.

허_ 수위단원들이 전문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위단원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느냐 안 맞느냐를 결정하면 된다. 대신 각 부서장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그 직을 걸고 그 일을 해야 한다. 국가 시스템에 대조했을 때, 수위단회는 국무회의와 같다. 그렇다면 안건을 상정하는 담당 부서에서 열 가지 안 중에 가장 좋은 안을 선택하고 그 근거까지 확실히 제시해 줘야 수위단원들이 빠르게 결정할 수 있다. 지금은 그 전문성과 근거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_ 수위단 시스템이 모순된 것 중 하나는 겸직 때문이라고 본다. 수위단회는 최고결의기관이고 교구는 행정집행기관이다. 그런데 수위단원이 교구장을 겸직함으로써 상위기관에서 정책과 법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하위기관에 가서 집행을 한다. 시스템적으로는 동일한 주체가 의사결정과 집행을 같이하면서 상호 충돌되는 면이 있다. 수위단회의 위상은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과 같다. 헌법재판은 여러 방면에서의 정책이나 법안이 헌법에 적합한지 위반하는지 판단하는 최고재판기관이다. 마찬가지로 수위단원들은 교법 해석에 최고의 권위와 판단을 가져야 한다. 수위단회에서 교법적으로 해석된 메시지가 교단의 정책 방향으로 정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위단원으로서 위상과 예우를 충분히 해줘야 중요 보직의 겸직과 분리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역사를 기술한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결정이든 기록으로 다 남겨야 한다.

왜 그런 의사결정을 했는지, 왜 그 사업을 하게 됐는지,

그것을 하기 위해 수만 가지를 검토해서

최적안을 골랐다는 기록이 갖춰져야 지자본위가 되고,
그 결과에 대한 신뢰로 다음 사람이 도움을 받는다.


공화제도 안에서 지자본위(智者本位)는 실현 가능한가.

허_ 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 보직을 맡게 되면 사견으로 판단하지 말고 근거에 기반해 판단해야 한다. 지금 교단을 보면 근거에 기반해서 사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선택해 준 그것을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나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 패턴이 계속 반복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그런 교단의 풍토를 많이 봤다. 프로답지 못한 그런 관행이 문제가 있어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또 하나는 결과에 대해서는 신뢰성을 담보해야 한다. 우리가 역사를 기술한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결정이든 결과는 있으니까 당대에는 정확한 평가를 못하더라도 후대에는 평가할 수 있게 기록으로 다 남겨야 한다. 왜 그런 의사결정을 했는지, 왜 그 사업을 하게 됐는지, 그것을 하기 위해 수만 가지를 검토해서 최적안을 골랐다는 기록이 갖춰져야 지자본위가 되고, 그 결과에 대한 신뢰로 다음 사람이 도움을 받는다. 후임에게는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오_ 수위단회가 최상위 교화단이고 종법사가 수위단회의 단장이기 때문에 교헌상 종법사의 지위는 절대적이다. 단장의 지휘 아래 공부도 하고 교화도 하고 사업도 해왔다. 그것이 공화제도인데 문제는 사업이다. 공부나 교화면에서는 종법사가 지자이지만, 사업면에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지자다. 재가교도가 없으면 외부전문가라도 영입해야 한다. 만일 수위단회가 좀 더 개방적으로 운영이 됐다면 앞서 전서 폐기 사태는 안 생겼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폐쇄적이다. 개방적으로 운영하다 보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좀 더 신중해지고, 전문영역에서 전문가를 찾게 될 것이다. 공화제도 안에서 수위단회 기능을 살리려면 사업 영역만큼은 전문 지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교단 중요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의 전문성은 어떻게 갖춰갈 수 있나.

허_ 저는 지금의 교정 정책은 변화하는 세상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생각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큰 것이 건축 불사다. 인구가 줄고 교화는 침체하고 있는데 건축 불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다. 저는 수위단원뿐 아니라 모든 정책결정권자들이 현 시대(체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깨지지 않는 이유는 병든 의사전달체계라고 본다. 상명하복은 출가 중심 교단이라 생기는 문제다. 재가들은 갖은 평지풍파를 당하면서 살기 때문에 출가들과 다르다. 교단의 중요정책은 재가들과 함께 해야 한다.

오_ 정부나 회사가 어떤 사업을 중요하게 추진하려면 좋은 인재와 예산을 투입한다. 우리가 청년교화와 대학생교화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예산은 터무니없이 적게 편성한다. 현재 대학생교화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라서 대학생교구를 별도로 만들어서 적극 운영해야 할 정도다. 대학생·청년이 중요하다고는 말하면서 직접적인 투자는 하지 않는다. 제가 볼 때는 총체적인 문제이기는 한데 무엇부터 바꿔야 하냐면 교단행정을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말고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서라도 교단의 인사든 행정이든 재정이든 누구나 설득가능하게 합리적으로 전문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시대가 더 이상 밀실 행정, 폐쇄적인 결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교단의 재정도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교단행정을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말고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서라도

교단의 인사든 행정이든 재정이든

누구나 설득가능하게 합리적으로 전문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시대가 더 이상 밀실 행정, 폐쇄적인 결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단 문화가 있다면?

허_ 교법의 시대화를 위해서는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 문화로 바꿔야 한다. 버릇없음을 수용하는 문화, 눈치 주지 않는 관대한 문화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출가중심 교단을 재가출가 평등한 교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출가중심 교단은 교법이 출가 안에 머물게 된다.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교법이 되길 바란다.

오_ 며칠 전 딸하고 말다툼이 있었는데 그때 딸에게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요지로 일방적인 훈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세대로부터 경험으로 배운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다음날 딸에게 딸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일방적인 소통을 사과하지 않으면 딸과의 소통이 점점 멀어지고 결국 아빠와 딸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교단의 스승, 선진들에게 신심을 받치는 것은 좋은데 일방적인 소통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스승에 대한 신심과 권위도 중요하지만, 제자에 대한 사랑과 자비가 있어야 한다. 수직적 소통구조에서 수평적 소통구조로 변화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있다면?

허_ 십인일단 단 조직이다. 예전에는 조직관리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트리 구조였다면 지금은 네트워크 시대이고 브로드캐스팅 시대이다. 십인일단의 뜻은 존중하되 형태까지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이다. 디지털교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 할수록 그 부분에 부딪힌다. 인간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 적응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깨트리고 벗어나려고 한다. 억지로 가두면 힘들어한다. 10명만 교화하면 전 세계도 교화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대종사 재세 시절에나 가능했다.

오_ 저 역시 십인일단의 본체는 살리되 시대에 맞는 응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는 대종사님이 이 시대에 왔으면 여성교역자들이 쪽진머리, 흰저고리 검정치마를 지난 100년 동안 입었으면 이제는 바꾸자고 할 것 같다. 외모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쓸 나이에 출가하겠다는 것도 기특한데 머리 모양, 옷차림이 출가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저는 교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크다. 우리 아이들게도 원불교 마음공부가 최고라고 생각해서 마음공부를 최우선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대종사께서는 교법을 직접 제정해줬고 훈련법도 만들어줬다. 역사상 그런 종교가 없다. 그런 자부심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묶여 교법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개정이 되어서 여자교무들도 결혼할 수 있지만 최근까지도 이것이 이슈가 됐다. 지엽적인 문제로 주세불 회상이 무너지거나 교도들의 신심이 떨어지고 그렇진 않는다고 본다. 그러니 초기 대종사의 개혁적인 정신을 살려서 과감하게 나가야 한다. 다만 원불교개혁연대의 뜻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실천방법에 있어서는 대중의 의견을 신중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교리를 습득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깨닫는 수행을

디지털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 시대에 맞게

디지털교화를 주류로 놓자는 것이다.

이 시대의 메인스트림은 디지털교화다.

디지털교화는 위계질서가 아니라 다양성이다.

다양성 안에서 우리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디지털교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허_ 지금 시대는 대종사 시대와 완전히 다르다. 불과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봐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디지털교화를 더 이상 서브 주제로 가져갈 것이 아니다. 메인 주제가 돼야 한다. 교리를 습득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깨닫는 수행을 디지털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 시대에 맞게 디지털교화를 주류로 놓자는 것이다. 건물 신축에 들이는 돈을 수많은 디지털교화 그룹에 1억씩만 투자해도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디지털교화는 무궁무진하다. 플랫폼, 콘텐츠,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교화는 기존 교화방법보다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방향을 잘 잡고 정책을 만들어 기술을 활용하면 디지털교화를 메인으로 가져올 수 있다. 지금은 교화의 대상이 달라졌다. MZ세대는 교당에 와서 교전을 보지 않는다. 만일 그 세대는 잘 모르겠고 우리는 교당에 와서 성가를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 듣고 하면 된다고 치부해 버리면 그들이 들어올 영역은 점점 없어진다. 이 시대의 메인스트림은 디지털교화다. 디지털교화는 위계질서가 아니라 다양성이다. 다양성 안에서 우리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두려워 말라.

오_ 교당을 아무리 예쁘게 지어도 교도들이 찾아오는 교화는 힘들다. 결국은 콘텐츠인데, 교법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결국 디지털교화에 답이 있다. 건축 불사에 들이는 정성으로 (디지털) 교화에 정성을 들이면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방향이 정해진다. 시대가 변한 만큼 수위단회는 교단이 나아갈 방향을 교리적으로 해석해서 내놓아야 한다.

 

교법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는 교당의 상시훈련 도량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허_ 교당은 현장이다. 교당만큼은 맞춤식 교육, 맞춤식 교화를 해야 한다. 그 사람의 수준에 맞게 구체적인 방법, 멘토, 자료를 제시해 줘야 한다. 교도 맞춤형 교화를 위한 출가·재가 교역자를 양성하면 된다. 수많은 콘텐츠가 매주 쏟아져나오는데 아직도 설교시간에 옛날이야기를 예화로 들면 교당에 나온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하늘에 있는 법이 아니고 이 땅에서 나의 생활 속에 바로 적용해서 쓰는 교리해석을 해야 ‘이 법이 대단하구나, 더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교당을 교도 맞춤형 상시훈련 도량화하자.

오_ 안타까운 것은 세상은 대종사가 세세생생 염원해서 만든 교법을 찾고 있는데, 우리는 그 명품(교법)을 체득하지 못해서 교화를 못하고 있다. 나는 그 명품을 자식들에게 물러주고 싶어서 아이를 낳기 전부터 출가시키겠다고 서원을 세웠고 지금도 그렇게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대종사가 밝혀 준 교법이 명품이라는 자부심이 있으면 남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화가 잘 안 되는 것도 자신감 없이 타성에 젖어 있어서 그렇다. 집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교법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교무들도 설교 단상에서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교법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설법해 달라. 그것은 말에 있지 않고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데 있다.

 

교법의 시대화에 대한 나의 총론은?

허_ 대중을 믿어야 한다. 지금은 후천개벽시대다. 출가·재가·신도·비교도를 막론하고 대중을 믿어야 한다. 대중은 이미 부처다. 인정하거나 믿지 않으면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다. 대중을 믿으면 제도나 자세가 달라진다. 모두가 부처인데 어느 한 부분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_ 교법의 위대함을 믿어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미 교법을 시대화·생활화·대중화했다. 교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옷은 어떻게 입을 것인가, 법회는 어떻게 볼 것인가 등 형식적인 문제는 이제 과감하게 시대에 맞추자. 예전에 음식을 젓가락으로 먹었다고 꼭 젓가락으로만 먹어야 하는가. 나는 교법의 위대함을 확실하게 믿는다. 여성교역자도 세련되게 옷 입고 아이 낳아 기르면서 마음공부도 해보자.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교법에 자신감이 있다면 전혀 두렵지 않다. 수위단원이 어떤 분이 되든지 대종사의 교법이 이미 시대화·생활화·대중화된 교법이니까, 이 교법으로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가자. 과거에는 교당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교당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자. 교법의 위대함을 믿고 개혁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개혁하자.

10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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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현 2021-10-06 09:47:38
잘 읽었습니다.
최고의 기획기사입니다.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교화에 대한 대책이
아주 잘 제시되어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교단은 희망이 없습니다.
위 해법이 하루 빨리 시행되기를 바랍니다.
지자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