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머무는 그리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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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머무는 그리운 집
  • 유성신 교무
  • 승인 2021.11.16 14:05
  • 호수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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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8


코로나로 잊혀진 대면 훈련을 시작하게 되면 자연 친화적 공간 안에서 직접 만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어 훈련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안암교당 청년들은 올해 운 좋게 2월과 11월 대면 훈련을 진행했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법을 열망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니 상시훈련의 장에서 정진 바라밀의 공덕을 얼마나 쌓아 왔는지 알 수 있다.

묵언하며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림 하는 ‘식사 명상’은 배식대를 지나면서 음식에 눈길이 머무르고, 식판에 마음을 담는 과정이다. 음식을 집어 입에 넣고, 혀와 이 사이에서 잘게 부서지는 느낌, 음식을 삼키면서 목에 넘어가는 과정, 오른쪽 왼쪽으로 몇 번이나 씹는지? 좋아하는 음식에 끌리는지? 고개를 숙이거나 전방을 응시하며 먹는지? 물 샐 틈 없는 마음챙김으로 내 몸과 마음에 오롯하게 집중하고 알아차림을 하게 한다. 마음이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사이 번뇌가 사라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식사를 하게 된다.

‘걷기 명상’에서는 축령산 휴양림 산책코스를 따라 왼발 오른발에 마음과 기운을 두고 시선은 전방을 응시하며 온전하게 자신에게로 향한다. 걷다가 번뇌가 일어나면 일어난 줄을 알고, 소리가 들리면 들리는 줄을 알고, 느낌이 있으면 느낌인 줄을 알아차림하고 다시 발에 집중하며 걷는다. 밖에서 들어오는 대상을 옮겨가며 밀도 있게 집중하고 분명한 알아차림을 한다. 계곡물 소리가 들리면 잠시 서서 물소리에 집중하고, 수북이 쌓인 단풍잎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소리를 듣는다. 잣나무에서 풍기는 진한 코끝에 닿는 향기로움도 느껴본다. 그리고 한여름 태양빛이 작열하는 듯한 노란 은행잎과 진빨강 단풍잎의 고유한 색을 눈여겨본다. 순수한 자연의 빛을 바라보며 낙엽을 밟으며 향기를 느끼며 물소리를 들으며 사소한 것에서 행복과 기쁨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지금 여기에서 대상과 순수하게 하나 됨은 비움이라는 여백의 아름다움이 사뿐히 내 안에 깃들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텅 빈 성품자리이며 본성이다. 이 마음을 기르는 것이 선(禪)이다. 선의 상태에서는 마음이 맑고 청정하며 고요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그대로가 보이고 들리며 아는 지혜의 힘이 생겨나 균형과 평정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아이들 때문에 바쁘고, 가족들과 직장생활로 정신없이 살다가 수많은 번뇌 속에서 긴장하고 애태우며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명상으로 젖어 드는 빛의 여명이 나를 짓누르는 무지와 무명의 허물을 파하며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연이틀 훈련을 마친 월요일 이른 아침 홍두깨 같은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숙소동 앞에 우뚝 선 은행나무 한 그루, 지금 막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완벽한 겨울로 진입했다. 손끝에 느껴지는 냉기가 예사롭지 않다. 가혹한 추위가 찾아올 것을 예감한다.

지금 우리는 이 순간 찰나에 영원을 산다. 타는 사막에 물이 간절하게 필요하듯 지친 심신을 평온하게 하는 훈련과 명상으로 온전히 나를 비우고, 낙원길을 열어가는 지혜를 터득하기를 염원한다. 육신의 근원인 푸근한 고향집이 있듯이 우리에게 영혼이 머무는 그리운 집이 있어야 한다.

11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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