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코로나와 영성] 이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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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로나와 영성] 이완의 기술
  • 김현오 교무
  • 승인 2021.11.29 02:36
  • 호수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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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영성김현오 교무보스턴교당
김현오
보스턴교당 교무

몇 년 전, 필자는 쥐 실험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쥐의 뇌 특정 영역에 초음파를 쏘아서 그 영역과 관련된 신체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작은 플라스틱 투명관에 갇혀있던 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양,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윽고 연구자는 쥐를 손으로 잡아 마취 주사 한 대를 놓았다. 쥐는 곧 얌전해졌다. 잠시 후 연구자가 쥐의 몸을 살짝 밀어 보더니 주사 한 대를 마저 더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쥐의 몸을 한 번 더 흔들어 보더니 “됐다” 하며 안심하고 실험에 착수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섬광 같은 충격과 놀라움이 일어났다. 연구원이 한 손가락 끝으로 쥐의 몸을 살짝 건드리는 것 같이 보였는데, 쥐의 몸 전체가 한 덩어리로 능글능글 아무렇게나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당신에게 온통 맡기오니 알아서 하세요! 여기에 나는 없어요’라고 하는 듯,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항복하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몸덩어리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이완의 몸 상태야’라는 전율이 일었다. 의식의 부재가 어떻게 이완이라는 몸 상태로 환원되는지 그 실상을 쥐의 몸을 통해 알았다.

우리가 일체 번뇌망상을 놓고, 마음공부를 하는 궁극적 목적은 몸의 건강한 이완상태를 위해서다. 각종 선행, 보은행을 닦는 것도 내적 평화, 고요, 즐거움, 자유, 행복, 일체감, 초월 등과 같은 높은 진동의 에너지 상태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 고양된 순간에는 우리의 몸도 긴장에서 이완으로 작동된다.

어느 해인가 빛이 완전히 차단되는 작은 소금물 탱크 안으로 들어가 누워서 물 위에 둥둥 떠 있은 적이 있다.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은 채, 빛 하나 들지 않는 암흑공간에서 얼마 동안 머물러 있는 체험이다. 탱크에 들어갈 때까지는 그 공간의 네 벽과 공간 배치, 오른쪽, 왼쪽에 대한 개념을 갖고 들어갔다. 그런데 완전히 밀폐된 어둠 속(탱크)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모든 방위좌표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의 한계도 모호해지고 감각이 무디어지는 것 같았다. 시간의 경과를 가늠할 수 없었다.
 

지금 우리 스스로 그물 쳐 놓고  자신을 가두고

구속하고 있는 관념들이나 기억들이 있다면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몸의 힘을 빼는 마음챙김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통한

몸을 이완하는 유념공부가 필요하다.

공간 좌표를 잃고, 나와 물 사이의 경계 감각도 사라지고, 시간에 대한 지각도 사라졌다. 나는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 숨 막히는 답답함에 휘말렸다. 그 심한 경험으로 자신을 몰아 본 덕에, 에고의 원초적 감정인 강도 높은 공포의 감정을 직면할 수 있었다. 시공을 좌표로 설정하고, 나와 남의 경계를 세워서, 내면에 삼천대천의 허망한 세계를 건설하여 사는 에고의 속성과 작용방식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됐다. 공포라는 감정은 지성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몸을 긴장시키고 나아가 얼어붙게 한다.

공포는 인간보편의 원초적 감정이다. 공포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전도몽상을 벗어 날 수 있고, 바로 정견을 얻을 수 있다. 공포는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끊는다. 얼어붙어서 굳어진 몸은 자유로운 사고나 높은 진동의 감정들, 초월적 내적 상태로 올라설 수 없다.

지금 우리 스스로 그물 쳐 놓고 자신을 가두고 구속하고 있는 관념들이나 기억들이 있다면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몸의 힘을 빼는 마음챙김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통한 몸을 이완하는 유념공부가 필요하다. 우리의 존재는 집중된 이완, 또는 이완된 집중상태일 때 가장 조화롭고 이상적인 생명 활동이 가능하다.

수행자로서의 길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인간의 성장, 인격성숙의 여정이라는 시각으로 삶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란 다만 보다 좋은 습관, 행복습관, 자유와 해탈로 가는 심신 상태로 들어 올리기 위한 작은 실천의 여정이었다.

이완된 집중, 집중된 이완에 대한 자기만의 내적 감각을 알아차리고 단련하여 자기만의 수행 노하우로 가능한 자주 시공을 잊고, 자타를 잊으며, 자유의 공간, 창조의 공간, 몰입의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상락아정(常樂我淨, 열반의 네 가지 덕)의 내적 상태를 유지하는 영적 건강을 기원해본다.

 

1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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