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법문] 무시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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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 법문] 무시선법
  • 한울안신문
  • 승인 2022.01.11 13:58
  • 호수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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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지름길 법문7
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우리 각자의 본성(本性)인 일원의 진리를 요약하면 공·원·정(空·圓·正)입니다. 이것은 세 가지 특성으로서 각각 서로 다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오직 하나’입니다. 무시선법은 이 공원정, 즉 자성의 정혜계(定慧戒)를 동시에 닦는 공부로써 우리 교법은 이것을 ‘삼학병진 수행’이라고 합니다. 무시선법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모두 앞부분에 나와 있는데, 간단히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만일 참다운 선을 닦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진공(眞空)으로 체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을 삼아」, 비록 중생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성품은 늘 진공묘유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이 진공묘유의 성품작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참다운 선(禪)입니다.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선을 한다는 것은 분별주착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안으로 마음이 허공처럼 비고 밖으로 일체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팎 따로따로가 아니라, 늘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라.」, 선의 이런 특성은 공적영지(空寂靈知)로 인한 것이어서, 경계에 끝없이 작용하되 실제로는 동(動)한 바가 없으며, 잠자코 고요히 있다고 하여도 결코 정(靜)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같이 한즉 모든 분별이 항상 정(定)을 여의지 아니하여」, 이때에 나투는 분별은 모두 주한 바 없이 나투는 지혜로써, 생생히 약동하되 그 당체(當體)는 언제나 텅 비고 고요합니다.

「육근을 작용하는 바가 다 공적영지의 자성에 부합이 될 것이니」, 바로 이때의 육근작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반야(般若)의 불성이 나타내는 작용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대승선(大乘禪)이요, 삼학을 병진하는 공부법이니라.」, 이러한 것이 만 생령을 건지는 큰 수행이며, 공원정(空圓正)을 온전히 갖추는 공부법입니다.

「그러므로, 경(經)에 이르시되 ‘응하여도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하시었나니」, 그러므로 금강경에서는 안과 밖, 그 어디에도 주한 바 없는 마음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천만 경계 중에서 동(動)하지 않는 행을 닦는 대법(大法)이라」 「이 법이 심히 어려운 것 같으나 닦는 법만 자상히 알고 보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 내왕하면서도 선을 할 수 있고 집에서도 선을 할 수 있나니, 어찌 구차히 처소(處所)를 택하며 동정(動靜)을 말하리요.」 여기까지가 무시선법의 골자입니다.

끝으로 무시선의 강령을 보면, 「육근(六根)이 무사(無事)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 간단히 말하면, 우리 자성의 ‘공적영지’가 행위로 나투는 것이 정의이며, 비록 착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분별 주착’에 의해서 나오는 행위는 모두 불의(不義)입니다.

1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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