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봄은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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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봄은 어떻게 오는가?
  • 유성신
  • 승인 2022.02.22 19:33
  • 호수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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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 11
유성신<br>서울교구 오덕훈련원 원장<br>
유성신
서울교구 오덕훈련원 원장

긴 겨울 거목들이 덩그러니 서 있는 숲길을 걷노라면 공동묘지의 주검처럼 사무치는 침묵의 바다에 잠겨 있다. 숨죽이며 온몸이 멈추었던 삼매의 동산에 올라 고요하게 귀 기울이니 영혼이 부활하는 두런두런 심장의 맥박 소리가 들린다.

극에 달했던 한파가 양지녘에 조금씩 부는 훈풍을 타고 음양상승의 조화로운 기운으로 새봄을 재촉하고 있다. 언 땅 녹여 부스스 꽃대를 힘껏 밀어 올리고, 물이 오른 가지 위에 꽃망울과 새잎을 터트리는 천백억 화신불의 강철같은 생명력이 눈앞에 선하다. 아무리 혹독한 추위도 대가를 치른 뒤에는 반드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순리이다. 매서운 추위를 잘 견딘 나무는 마른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고 소생하는 생명의 봄을 맞이한다.

인간이 귀히 여기는 진주 한 알의 탄생은 조개의 살에 박힌 모래알을 안고 통증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 아픔을 줄이는 특수한 물질인 체액으로 거듭거듭 감싸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보석의 진주가 된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이렇게 극한의 위기를 극복하며 새로운 가치로 창조되는 것을 보면, 오히려 고통 속에서 숨은 희망의 빛이 점화되어 더 큰 힘을 발하게 되는 산경전을 읽게 된다.

우리의 삶이 어려운 시기에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이루려는 욕망보다는 내 자신을 진리에 맡기고 멈추어 가장 밑바닥의 근원으로 내려가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바에 주착하여 오는 것을 오지 않기 바라거나 아직 오지 않는 것을 애타게 오기를 바란다면 그 때문에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어렵고 큰 경계일수록 급한 마음을 늦추어 영생을 향한 긴 여정 속에서 휴식과 멈춤 그리고 충전하는 힘으로 다음 성장을 위한 걸음걸음이 되어야 한다.

서원이 있는 자에게는 오는 역경이 내 자신의 탐진치를 버리는 최고의 기회이자 특별한 선물이다. 보살행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오는 역경은 달게 받아 자신을 제도하는 공부의 기회로 삼고 내 앞에 안락과 부귀영화가 와도 미리 경계하여 다 누리지 않으며 일체중생에게 유익을 준다. 그리고 험난한 파도가 오면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항 없는 평정심으로 파도와 하나가 된다. 이런 여유와 여진으로 마음에 고요와 균형이 생겨날 때 청정하고 맑은 우주 천지자연의 기운과 내 기운이 합일되어 진리의 음조와 음덕 속에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그 일을 이루어간다. 봄바람은 사가 없이 불어 주지마는 산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는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삼독심을 녹여내고, 심신을 청정하게 살아가는 불보살의 세계는 뜨거운 지옥에 들어가서도 그곳이 지옥 중생을 건져 올리는 꽃이 피는 극락이 된다. 그러나 중생은 극락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무지와 무명에 가려 견디기 어려운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극락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항상 경계에 쉽게 물들지 않고 비어 있으면 극락과 지옥, 순경과 역경이 모두 불이문(不二門)이다.

생명의 잉태를 꿈꾸는 봄은 버림과 기다림 그리고 사무치는 몸부림 속에서 인욕으로 빚어낸 소리 없는 발자국으로 자비의 훈풍을 타고 오는 것이다.

2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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