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교무의 길] 원형이정元亨利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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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무의 길] 원형이정元亨利貞
  • 강동현 교무
  • 승인 2022.03.28 18:31
  • 호수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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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무의 길 27
강동현<br>군종교구 칠성교당 교무<br>
강동현
군종교구 칠성교당 교무

《주역》에서 〈건괘〉를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밝히고 있다. 원(元)은 봄과 만물의 시초, 형(亨)은 여름과 만물의 성장, 이(利)는 가을과 만물의 완성, 정(貞)은 겨울과 만물의 수확을 뜻한다. 즉, 계절의 변화와 함께 만물의 시작과 완성을 밝히고 있다. 의지적으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로 해석되어 인성의 표준을 제시한다.

건괘와 같은 장병이 있다. 그는 바로 칠성교당의 교도장병인 최재형 용사이다. 원불교와 속 깊은 마음공부로 만난 인연이다. 그 과정을 되돌아보면 건괘에 부합된다. 그래서 원형이정과 같은 인연이다. 전역을 앞둔 최 용사를 생각하며 원형이정으로 그 인연을 풀어 본다.

첫째, 원(元)-호기심으로 원불교와 인연이 되었다. 원기106년 2월 21일 일요일이었다. 이 날은 코로나19 상황으로 통제된 종교행사가 4개월 만에 열린 날이었다. 오랜만에 신병교육대 원불교 종교행사를 주관했다. 신청자는 2명이었다. 그 가운데 한명이 최 용사였다.

원불교 종교행사를 왜 신청했는지 물어봤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1시간 넘게 문답감정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최 용사의 눈에 빛이 났다. 끝나고 소감을 물었다. 최 용사는 “교리가 마음에 들고, 마음수행을 꼭 하고 싶다”며 교무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둘째, 형(亨)-사종의무로 마음공부에 입문하였다. 원기106년 2월 27일 토요일에 최 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당 SNS에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제3회 교도의 사종의무 지키기 대회’에 참가하면서 상시훈련을 시작했다. 매일 문답감정을 통해 마음을 점검했다.

원기106년 5월 23일 일요일에 최 용사는 칠성교당에 처음으로 오게 됐다. 코로나19 상황으로 통제된 종교행사가 다시 열린 것이다. 종교행사 참석 후 최 용사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며 좋아했다. 나아가 적극적인 원불교 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셋째, 이(利)-칠성교당의 주인으로 거듭났다. 최 용사는 대대 군종병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예회 때는 의식을 주례했다. 장병의 간식을 챙기는 것도 도맡았다. 어느 날은 호떡 재료를 사와서 직접 요리를 하며 나눔을 실천했다. 교당의 주인이었다.

원기106년 8월 21일에 입교식을 하고 입교증을 받았다. 법명은 원정(元貞)이었다. 원형이정을 축약한 이름이다. 입교증을 수여하며 원형이정의 이치로 마음공부를 당부했다. 원정 교우는 정성스럽게 상시훈련을 실천했다. 속 깊은 마음공부로 교도장병의 모범이 되었다.

넷째, 정(貞)-선한 영향력으로 입교연원을 했다. 원기107년 3월 15일까지 ‘제8회 교도의 사종의무 지키기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 대회는 원정 교우의 마음공부의 완성이자 시작이었다. 그의 선한 영향력으로 8명의 장병을 교당으로 인도한 것이다.

대회 시작 전, 동기와 후임들에게 홍보를 하고 참가를 독려했다. 특히, 연원자로서 역할을 완벽하게 했다. 그는 입교자들에게 사종의무 실천방법을 알려주고 지도했다. 그 결과 좋은 공부인들이 교당으로 연결되었다. 어려운 교화환경에서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했다.

원정 교우는 대회 후 소감문에 “마음공부를 하는데 큰 재능과 능력은 요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정성을 다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하면 된다. 모두가 부처가 되도록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정말 귀한 인연이다. 원정 교우는 전역 후에 영국의 캠브리지대학교로 진학한다. 군 복무기간에 이뤄낸 결과이다. 그의 앞날을 대산종사의 법문으로 축원한다. “실패와 성공은 생각할 것 없이 원리 원칙과 원형이정을 생활신조로 삼고 나가자는 것이니라”

4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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