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너희 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원래 불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되는 이치를 스스로 깨쳐 알게 하는 교이니 그 이치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하면 될 것이요, 그 이치를 알고 보면 불생불멸의 이치와 인과보응의 이치까지도 다 해결되나니라.」 「그 이치를 안 후에는 어떻게 공부를 하나이까.」 「마음이 경계를 대하여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게 하나니라.」(<대종경> 교의품 27장)
우리의 공부를 한마디로 하자면 마음공부입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라는 것을 모른 채 공부를 한다고 하면, 이것은 칼을 모르면서 요리를 잘하겠다는 것과 같고, 몸에 대해 모르면서 건강을 추구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 마음을 이야기할 때 ‘마음은 실체(實體)가 없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 삼계유심(三界唯心) 혹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합니다. 삼계(중생이 윤회하는 세계)가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고, 모든 것(‘마음’ 자체도 포함)은 오직 이 ‘마음’이 만들어냈다는 뜻입니다.
가령 우리에게 눈[眼]이 없다면 모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귀가 없다면 소리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없으면 일체 모든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물에 대해서 ‘있다,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이 ‘마음’이 있어야 온 우주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마음공부는 이 ‘마음’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사실 그다음 문제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건강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사람이 정작 제 몸뚱이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불법의 골수(骨髓)이며, 구도수행에 있어 깨침의 몸통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의 본체를 깨치게 되면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응보의 원리’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럼 이 이치를 다 알고 나서는 어떻게 하는가?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마음이 경계를 대하여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자신의 본성에 이미 갖춰져 있는 성질이기 때문에, 마음의 본체를 깨친 공부인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이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일체유심조’라는 이 한 구절을 깨치기만 하면 천만 권의 경전을 배우는 것보다도 낫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유심조 안에는 삼세 모든 부처님이 해탈하고 성불하신 비밀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화엄경>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보라. 일체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