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에서 온 편지] 느티나무 카페를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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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 느티나무 카페를 열며
  • 유성신
  • 승인 2022.04.28 16:47
  • 호수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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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 13
유성신<br>서울교구 오덕훈련원 원장<br>
유성신
서울교구 오덕훈련원 원장

축령산(860m)은 잣나무 군락지가 서식하여 심신을 편안하게 하며 치유케 하는 피톤치드 향이 가득한 곳이다. 서리산(832m)은 축령산과 나란히 이웃하여 정상부근에 만여 그루의 연분홍 철쭉이 한반도 모양의 군락을 이루어 오월은 축제로 장관을 이룬다. 또한, 금낭화 등 신비로운 수종의 자연 야생화도 볼거리가 있어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긴 휴식기에 들어간 산자락에는 상춘객들이 다시 찾아들고 있다.
느티나무 카페에는 이 길목에 위치하여 거목이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문턱 앞마당에는 드넓은 데크가 있다. 그리고 바로 돌계단 아래에는 축령산과 수리산의 두 축이 만나는 수동계곡이 흐른다. 찻집 안에서 보이는 밖의 풍광과 그늘을 드리운 벤치에서 물소리와 새소리 생동감 있는 자연을 즐기며 차와 커피를 마시며 맛과 향을 음미하기에 아늑한 뜰 안이다.
이곳은 원래 다례원이었으나 관리가 쉽고 드나드는 대중이 편안하도록 한 생각을 바꾸고 보니, 활용도가 높은 유익한 공간의 가치로 새롭게 태어났다. 훈련원 식구들이 직접 페인트를 칠하고 인테리어를 하며, 뜻있는 분들의 작은 마음과 마음을 모아 사진, 조명, 테이블 그 밖의 필요한 소품들이 마련되었다.
생명의 가녀린 움과 꽃을 피우는 절정의 봄날, 귀한 손님들의 발걸음이 경쾌하도록 기타 반주에 자유롭게 찻잔을 기울이며 시름을 잊게 하는 공간을 열게 되었다.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 아래 더위를 잊게 하고 계곡에 발을 담그며 휴식의 의지처가 된다. 가을에는 느티나무의 여울진 단풍이 데크 위를 수북이 뒤덮은 그 위에 찻자리를 마련하여 다완에 따끈한 말차 한 사발을 마시면 운치가 그만이다. 겨울에는 장작 난로를 피워 올리고 전면 유리창 너머로 흩날리는 흰 눈의 설경 앞에 커피 한잔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원두의 향을 코끝에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사계절 한가롭게 사유 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조선시대 초의 선사의 동다송에서는 찻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손님이 많으면 소란스러우니 고상함을 찾을 수 없다. 홀로 마시면 그윽하고 둘이 마시면 빼어난 것이요. 셋은 멋이라 하고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일곱 여덟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는 손님이 적어야 하고, 손님이 많으면 수선스럽고 시끄러우니 맑은 정취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혼자서 차를 마시는 것은 속세를 떠난 신의 경지라 했다.
느티나무 카페는 도량 안에 소박하게 있는 주인이 따로 없는 무료 찻집이다. 이곳에서 혼자 차 한잔을 마시고 신의 경지로 가는 길목이 되면 더이상 바랄 것 없는 이상적인 무릉도원이 될 것이다. 차의 그윽한 맛과 향을 음미하며 여유로워지면, 작은 풀꽃 하나에도 내 눈길이 머물러 세심히 바라보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며 천상락의 행복에 젖어 든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천천히 걷거나 머물러서 찬찬히 대상을 들여다보라. 외진 산비탈 길에 이름 없이 몰래 피어 삼매에 든 들꽃 한 송이에 내 눈길이 머무는 순간 줄탁동시가 되어 풀꽃 하나가 서서 진리를 설하여 나를 교화한다.
꽃이 피어 있고 천지자연에 펼쳐진 이 모든 대상이 스승이지만, 내 마음이 열리고 눈을 떠야 그곳에서 꽃을 만나고 스승을 만날 수 있다.
느티나무 아래 찻집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어느 날 문득 도심의 번거로움을 벗어나 청아한 영혼을 일깨우는 이곳과 인연이 되기를….

4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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