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법문] 무엇이 ‘큰 공부’인가
상태바
[지름길 법문] 무엇이 ‘큰 공부’인가
  • 라도현
  • 승인 2022.05.11 13:24
  • 호수 12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름길 법문15
라도현<br>화정교당 교도<br>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보통 사람들은 항상 조용히 앉아서 좌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이나 읽는 것만 공부로 알고 실지 생활에 단련하는 공부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하나니, 어찌 내정정(內定靜) 외정정(外定靜)의 큰 공부 법을 알았다 하리요. 무릇, 큰 공부는 먼저 자성(自性)의 원리를 연구하여 원래 착(着)이 없는 그 자리를 알고 실생활에 나아가서는 착이 없는 행(行)을 하는 것이니, 이 길을 잡은 사람은 가히 날을 기약하고 큰 실력을 얻으리라. (중략) 이는 곧 동정간(動靜間)에 끊임 없는 공부를 잘한 공덕이라, 그대들도 그와 같이 동정일여(動靜一如)의 무시선(無時禪) 공부에 더욱 정진하여 원하는 삼대력을 충분히 얻을지어다」 <대종경> 수행품 9장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고 생업(生業)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취미로 하는 사람을 낚시꾼이라 하고,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어부라고 합니다. 이 둘의 차이는 큽니다. 낚시꾼은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아쉬워하기는 해도 근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부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근심하고 얼굴에 그늘이 집니다.

마음공부의 분야에서도 비슷합니다. 무릇, 불자(원불교 교도) 가운데 마음공부를 취미로 하려는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마음공부를 숙명으로 여기는 사람은 표정이나 태도가 아무래도 다른 데가 있습니다. 흔히 ‘꾼이 꾼을 알아본다’고 하는 것처럼, 주먹을 쓰든, 음악을 하든, 아니면 투기꾼이든, 소위 ‘타짜’는 타짜라야 알아봅니다.

마음공부의 타짜는 이야기를 좀 오래 하다보면 언제나 대화의 중심이 ‘마음’으로 가 있습니다. 숨길 수 없는 본능입니다. 이들은 마음공부가 삶의 중심에 있고, 이것의 성패(成敗)가 자신의 존재가치입니다. 불교에선 이런 사람들을 수행자라고 부릅니다. 앞서 법문에 나온 ‘큰 공부’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는 공부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큰 공부로 내정정 외정정을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내 마음 ‘속’과 마음 ‘밖’(경계)에서 해나가는 공부입니다. 제가 보면 내정정과 외정정의 두 번째 글자인 정(定)은 삼학의 정·혜·계에 있어서의 정이며, 그 뒤의 정(靜)은 적정(寂靜)이라고 하는 ‘깊은 고요’입니다.

따라서 내정정(內定靜)은 ‘안으로 마음이 텅 비고 고요하다’는 것이고, 외정정(外定靜)은 ‘밖으로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위 두 공부는 실상 무시선법에 있는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와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와 같은 뜻입니다.(2020년 7월 ‘공즉시색’ 칼럼, 무시선법 3~4회 참조)

그리고 소태산 대종사께서 「큰 공부는 먼저 자성(自性)의 원리를 연구하여 원래 착(着)이 없는 그 자리를 알고, 실생활에 나아가서는 착이 없는 행(行)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가 무시선법의 수행원리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동정간(動靜間)에 끊임 없는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공부입니다.

이 법문 속에 우리 교법수행의 정수(精髓)가 들어있습니다. 간결하지만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입니다.

5월 13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