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Z세대의 마음공부] 억억억 조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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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의 마음공부] 억억억 조조조
  • 박시형
  • 승인 2022.07.26 17:36
  • 호수 1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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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의 마음공부 7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억만장자가 1명 나올 때, 극빈층이 100만명씩 는다는 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세계의 경제가 IT화, 빅 데이터화 할수록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운이 좋은 사람은 더 부자가 되지만 기회를 못 가진 부류가 더 늘어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디지털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젊은 사람들은 기회를 더 얻기 위해서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지방은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고 걱정한다.

심지어 자본주의의 폐해가 지나친 나머지 한물갔다고 느끼는 공산주의·사회주의 논리가 MZ세대를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몇 년 전, ‘세계는 실리콘밸리를 싫어하는가?’라는 뉴욕 타임즈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반도체로 시작한 실리콘밸리가 세계의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면서 부작용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실리콘밸리를 싫어해도, 세계의 우수한 젊은이들은 실리콘밸리로 모여든다. 실리콘밸리는 재주가 많은 젊은이 천국이다. 돈과 기회가 몰리고 이것이 더욱 증폭되어 부자가 속출하고 세계의 디지털 경제를 지배한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늘고 있고, 심지어 세계가 모르는 사이에 실리콘밸리에 지배당하게 되는 추세라고 걱정한다. 실리콘밸리가 세계의 양극화를 만들어낸다고 비판받고 있다.

문제의 해법으로 공산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왜 공산주의를 이기고 현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까? 자본주의는 인간의 살림살이에 가장 중요한 지표로 ‘자본’을 내세운다. 따라서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이 존중받는 경제체제이다. 기술이나 노동은 자본을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서 공산주의에서는 자본보다 인간의 ‘노동’이 더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18, 19세기 영국의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진행될 때, 자본가들은 잔인하리만큼 어린 노동자를 이용하고 착취했다. 당연히 인간적으로 고뇌했던 ‘젊은 철학자, 혁명가’들은 자본보다 인간이 더 중요한 ‘따뜻한’ 경제를 꿈꾸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한 공산주의가 왜 지금과 같이 독재체제와 등식이 되었을까? 여러 이론과 의견이 있지만, 필자는 바로 ‘인간의 마음’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노력한 결과가 바로 확실한 ‘숫자’로 나타난다.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자본이 늘지 않으면, 세금도 못 내고, 미래를 위한 투자도 하기 힘들다. 또한 자본을 늘리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공산주의에서는 노동을 측정할 방법이 없다. 열심히 노동했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회는 부자가 되지 않는다. 노동시간으로 측정하면, 놀면서 일하는 척하게 되고, 결과로 차등을 두면 소위 ‘노동 차별’이라고 태업을 한다. 바로 공산주의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대신 독재자만 양산하는 이유이다.

자본주의는 잔인하게 보이지만, 가장 합리적으로 노력한 결과가 ‘숫자, 즉 자본의 증식’으로 나타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가 1945년 광복을 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차 대전 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성공을 거둔 나라가 된 것 역시 자본주의에 기인한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지금 도전을 받고 있다. 바로 양극화라는 함정 때문에 말이다.

부자나라가 되었지만, MZ세대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이 예전보다 더 부담된다고 느낀다. 한번 가난이라는 함정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뿐만이 아니고 중국이 그러하고, 베트남도 한국과 같이 발전하면,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이미 세계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바로 세계화의 다른 얼굴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1900년대 초, 일본과 한국이라는 극단적인 양극화 프레임에서 하나의 세계를 꿈꾼 원불교는 어떤 해답을 내어놓을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가라고 할까. 아니면 더욱 실리콘밸리처럼 되라고 할까? 둘 다 아닌 새로운 차원의 해답을 내어놓을 것 같다. 여러 선생이 혼재되어 민중을 혼란하게 만들 때, “누가 참 스승입니까?”하고 제자가 물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종경> 제14전망품 8장에서 “모두 다 참스승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둘 다 참 주의니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어느 한 편에 서서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공산주의, 독재 역시 좋지 않은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므로 ‘참 좋은 주의’라고 하실 것이다. 실리콘밸리 역시 좋은 스승이다.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은 어지러운 지도자, 독재자를 증오하는 대신, 그들을 통해서 제대로 된 길을 발견하게 하는 ‘참 스승’으로 느끼는 큰마음이라야 발견할 수 있다. 스승은 길을 가르쳐 주는 대신, 길을 발견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길이 보이지 않는 지금, 바로 우리가 원불교 마음공부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7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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