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초기 기록물을 톺아보며 새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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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초기 기록물을 톺아보며 새 길을 찾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5.03.15 15:53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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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연구회창건사
(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37호)      

 

제목에 ‘톺아보며’라는 문구가 낯설을 수 있겠다. ‘톺아보다’는 ‘샅샅이 훑어가며 살피다’는 뜻이다. 단순히 읽는 것만이 아니라 행간(行間)의 의미를 눈치채자는 게다. <불법연구회창건사>는 제1대 1회 12년의 역사를 머리말을 제외하고 28장으로 구성하였는데, 회보 연재 시 인쇄소의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원문의 목차는 16장에서 18장으로 건너뛰어 17장이 빠져있고, 27장은 두 번이 나온다. 이를 바로잡아 18장을 17장으로 올리고, 27장은 26장과 27장으로 정리하고, 29장은 28장으로 바로잡았다. 구성은 1~4장 : 소태산의 가계와 구도 과정, 5~7장 : 대각과 시대 및 종교 상황 인식, 8~12장 : 제자와의 만남, 조직의 결성 및 전개 사업, 13~16장:교단의 창립 준비 과정과 창립 선언, 17~25장 : 제정 완료된 각종 법규 내용, 26~28장 : 제1회 기념총회 및 당시의 상황으로 되어 있다.

 

 

불법연구회창건사
(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37호)                

2. 보는 것마다 의심을 내신 일
대종사 7세 되시던 해에 벌써 큰 의심이 나시었다. 어느 날 날씨가 심히 화창하고 하늘에는 한 점의 구름이 없으며 사방 산천에는 청명한 기운이 충만하여 마치 새 천지를 보는 듯한 때이다. 대종사 고요히 앉으사 이 대자연의 풍광을 사랑하시며 위로 맑은 하늘을 이윽히 보시드니 문득 생각이 나시기를, ‘저 하늘은 얼마나 높고 큰 것이며 어찌하여 저렇게 깨끗하게 보이는고’ 하는 것이 제일 먼저 의심이었고, 그 뒤에는 또 생각나시기를 ‘저와 같이 깨끗한 천지에서 우연히 바람이 동하고 구름이 일어나니 그 바람과 구름은 또한 어떻게 되는 것인고’ 하는 것이 두 번째의 의심이었다. 
그리하여 한 번 의심 머리가 시작됨을 따라 일백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나를 생각한즉 내가 스스로 의심되고, 물건을 생각한즉 물건이 또한 의심이 되고, 낮과 밤이나 사계절을 생각한즉 주야晝夜 사시四時가 모두 의심되어, 이 의심 저 의심이 한가지 대종사의 가슴을 긴장緊張케 하였다. 그러나 그 의심 머리를 한 번 해석해 보기로 한즉 모두가 구름과 안개[운무雲霧] 중에 있는 산을 바라보기와 같아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묘연渺然해지고 하나도 그 해답을 얻기가 어려운지라, 대종사 스스로 생각하시되 ‘이 모든 이치를 세상에 아는 자 그 누구인고? 만일 알기로 하면 물론 알게 할 방식이 있겠지마는 내가 그 방식을 모르는 까닭이로다’ 하시고, 스스로 탄식함을 마지 아니하셨다. 이로부터 부모의 명에 의하여 밖으로는 비록 한문을 배우시나, 글 배우는 것에는 사실 뜻이 적으시고 좋은 의복이나 음식이나 기타 노는 것[유희遊戱] 등의 일은 조금도 생각지 아니하시고 오직 이 모든 것을 일체로 알고자 하는 것이 중심에 철저한 원이 되시었다.
어느 때는 하늘을 연구하시다가 하늘이 산에 닿은 듯한 것을 발견하시고 몇 번이나 산에 올라 그 실지를 탐사하셨다 하며, 또 어느 때는 구름을 생각하시다가 인간에 모든 연기[연화煙火]가 위로 구름이 된 줄로 인증하시고 스스로 상쾌한 마음을 내신 일도 있었다 한다.

3. 사숙私塾 선생을 놀라게 하신 일
또 10세 되시던 해에는 이러한 일이 있었다. 대종사께서 한문 사숙에 다니시더니 그 사숙 선생이 대종사의 정원에 과실 나무가 많이 있으면서 과실 선물을 진즉 아니한다는 이유로 대종사를 미워하는 기색을 보이었다.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마음은 있었으나 아직 부모의 처리가 없으므로 미처 과실 선물을 하지 못하고 있던 중 때마침 동짓冬至날을 당하였는지라, 그 선생이 조선 재래 습관에 의하여 동지 팥죽을 준비하였던 바, 대종사와 같이 다니는 한 학생에게는 특별히 안방에 불러들여 팥죽을 주었으되[공궤供饋], 오직 대종사에게는 나눠주지[공궤치] 아니하며 뿐만 아니라, 가지고 온 찬밥[냉반冷飯]을 사랑에서 혼자 잡수시되 온수 공급까지도 하지 않는지라, 대종사 내심에 좀 불쾌히 여기셨더니, 후에 그 선생이 어떠한 친구와 같이 이야기 하던 중 말하기를 나는 원래 이 성질이 굳세서[견강堅剛] 평생에 누구에게든지 놀래어 본 적이 없고 또는 구타毆打나 위협威脅을 당하여 본 바가 없었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 한 일이 있었다. 
그때에 대종사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속으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선생님을 해지기[일모日暮] 전에 놀라게 하리다’ 하신대 그 선생이 분연奮然히 가로대, ‘네가 어찌 감히 나를 놀라게 하리요. 만일 놀라게 한다면 너의 집안에 큰 파벽이 될 것이다’ 하고 조소한 기색을 보인 후에 또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해지기[일모日暮] 전에 나를 놀래키지 못하면 어른을 조롱嘲弄한 죄로 너의 다리는 성하지 못하리라’고 위협하였다. 대종사 가라사대, ‘내가 선생님을 놀래키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죄를 당하려니와 만일 놀라게 할 때에는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선생「하기는 어떻게 해?」 대종사 가라사대, ‘내가 만일 선생님을 놀라게 하거든 후일에는 팥죽을 나눠 먹을 때[공궤=供饋] 차별을 내지 마시라’고 말씀하시었다. 그 때에 옆에서 듣던 그 선생의 친구가 이상이 여기여 말하기를, ‘자네 언제 저 아이에게 팥죽 안 준 일이 있었던가? 만일 자네를 놀라게 하거든 팥죽을 차별 없이 주게’ 하고, 다시 대종사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이번 약속한 일을 잘 들었으니 네가 만일 해지기[일모日暮] 전에 저 선생님을 못 놀라게 할 시는 내가 증명하여서라도 너를 꼭 맞게 하리라’고 말하였다. 
그 날 오후에 대종사 그 선생의 아들 일곱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가만히 문앞에 나와서 그 선생의 소유인 나무 벼늘에 불을 놓으시니 일시에 불길이 치솟아서[화광火光] 형세가 심히 위급한지라 당시 그 선생의 형편을 약론하면, 그 선생은 여러 사람의 산장山庄을 많이 관리하여 매년 솔가지판매[송신매도松薪賣渡]로써 유일한 생계를 하여오던 터이며 며칠 전부터 마을 노동자들이 가위 총출동하다시피 하여 수만 다발 솔가지[송신松薪]를 한 곳에 산같이 쌓게 되었으며, 솔가지[송신松薪]을 쌓을 때에 떨어진 이파리, 즉 솔잎 벼늘이 또한 집채와 같이 그 옆에 있게 되었든 바, 대종사의 불 놓은 곳은 이 솔잎 벼늘이었다. 그 선생이 자기의 생명선인 나무 벼늘에 일어난 불길을 보고 참으로 크게 놀라서 웃옷을 벗어 소변통에 적셔 가지고 엎어지고 넘어지며[전지도지顚之倒之] 그 현장에 가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 간신히 그 불을 끄게 되었다. 불을 끈 뒤에는 그 선생이 방화의 원인을 조사하여 무단히 그날 나무 져 들인 노동자들의 흡연중 실화(吸煙中失火)라고 질책하던 중, 그 선생의 아들이 대종사의 방화한 사실을 고하니, 그때에 대종사께서는 방화하신 후 숨풀아래에 앉으시어 그 현장을 보시고 있는지라, 그 선생이 크게 화가나서[대경대노大驚大怒]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곧 대종사를 잡고자 하니, 대종사 말씀하시되 ‘이것이 오전에 선생님과 약속한 일을 실행함이거늘 선생님은 어찌 그다지 성을 내시나이까’ 하고 곧 달아나서 다시는 그 선생에게 한문을 배우지 아니하시니, 그때에 참견한 여러 사람들은 혹은 비방도 하고 혹은 장차 비범非凡한 인물이 되리라고 말하였다.(계속)

김선명 영광교구장

3월 1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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