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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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의 깨달음
  • 한울안신문
  • 승인 2025.04.11 11:55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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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대종사께 여쭙기를 “이러한 세상에도 견성한 도인이 있사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세상일수록 더욱 견성한 도인이 많이 나야 할 것이 아닌가.” 그 사람이 다시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참으로 견성성불을 하셨나이까.” 대종사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견성 성불은 말로 하는 것도 아니요 말만 듣고 아는 것도 아니므로, 그만한 지각을 얻은 사람이라야 그 지경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며, 도덕의 참다운 가치는 후대의 천하 사람들이 증명할 바이니라.”
대종경 실시품 11장.

소태산은 스스로 ‘견성見性을 했다’, ‘대각大覺을 했다’ 또는 ‘대원정각大圓正覺을 했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소태산이 견성을 했는지 그 견성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을까? 자신이 확실히 견성을 하고 깨달았다면 다른 사람의 견성 여부와 깨달음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겠지만, 본인이 견성을 하지 못했거나 했는지 못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정도라면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적 상황에 대한 소태산의 매우 적절한 비유 법문이 있다.

자기가 도인이 아니면 도인을 보아도 도인인 줄을 잘 알지 못하나니, 자기가 외국 말을 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이 그 외국 말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알 것이며 자기가 음악을 잘 알아야 다른 사람의 음악이 맞고 안 맞는 것을 알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 하노라. <대종경> 인도품 59장 중에서.

깨달음의 핵심 내용
원기 원년 사월 이십팔일(음 3월 26일)에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대종경> 서품 1장. 

흔히 원불교에서 ‘대각일성’大覺一聲이라고 일컫는 대목이다. 약 20년 정도의 구도 끝에 가장 크고 근본적인 진리를 온전히 깨달았음을 나타내는 첫 번째 표현이다. 이 깨달음으로부터 구도자 소태산은 비로소 새로운 붓다, 부처로서의 소태산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격적인 성불제중의 길을 걷게 된다. 

만유가 한 체성
소태산이 깨달은 첫 번째 내용이 바로 ‘만유가 한 체성’이라는 내용이다. 만유란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면 ‘체성’體性이란 무엇일까. ‘체’體라고 했다면 ‘몸’이라고 직역을 해서 새겨도 되겠지만 ‘체성’이라고 했기 때문에 개별적 존재들의 ‘몸’이 아니라, 만유가 ‘한 몸과 같은 성질’을 가졌다는 의미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소태산은 우주 만유가 하나의 거대한 몸과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원상 법어’의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의 의미와 같다.
 
만법이 한 근원
여기서의 ‘만법’萬法의 의미는 어떤 존재로서의 만법이라고 하기보다는 이법, 이치로서의 만법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진리, 이법, 이치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도 깨달은 안목에서 보면 모든 이치들이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소태산은 깨달은 것이다. 소태산의 법맥을 이은 정산은 그의 깨달음과 구세 경륜을 이름하여 ‘삼동윤리’라는 게송으로 표현했는데 그 내용이 소태산의 대각 일성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 세계 건설하자.’ <정산종사법어> 유촉편 38장 중에서. 

내용을 따로 나누기 어렵지만 굳이 나눈다면 ‘만유가 한 체성’이라는 내용은 ‘한 집안 한 권속’이란 부분, ‘만법이 한 근원’이란 내용은 ‘한 울안 한 이치’라는 부분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겠다.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
생멸 없음에 대한 교설은 불교 교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생멸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생멸 없음의 깨달음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 불교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태산이 불교 경전 중에서 꼭 배워야 할 경문들을 선별해서 묶은 <불조요경> 가운데서 대표적인 대승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의 핵심 내용 역시 ‘불생불멸’不生不滅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과보응의 이치’인 ‘인과론’을 깨달음의 핵심 내용으로 드러내고 있다. 소태산의 교리 가운데 인과론이 일관되게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소태산의 깨달음에서 인과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다른 것인지, 또는 하나의 진리의 양면적 속성인지 등에 대한 연구는 깨달음을 구하는 이들의 몫이라고 본다.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만유가 한 체성’, ‘만법이 한 근원’, ‘생멸없는 도’, ‘인과보응되는 이치’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소태산의 깨달음도 이들을 따로 깨달은 것은 아닐 것이다. 진리를 ‘통째’로 깨달았을 것이다. 이들 깨달음의 내용들이 ‘서로 바탕해서’라고 했으니 어떤 것이 먼저고 나중인지를 따질 수도 없고, 어떤 것이 본질적이고 어떤 것이 부수적인 것인지를 나눌 수 없이 서로 ‘한 두렷한 기틀’을 이루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 ‘한 두렷한 기틀’을 소태산은 ‘○’으로 시각적 상징화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되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 하시니라. <대종경> 성리품 1장. 대각의 심경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달에 맑은 바람이 불면 삼라만상이 자연히 밝게 드러난다’ 정도로 직역할 수 있겠다.잘못된 해석의 위험을 무릅쓰고 풀어보자면, 본래 밝은 달을 사람의 ‘성품’으로 본다면 밝은 자성의 광명을 가리는 구름을 맑은 바람이 불어서 걷어가 버리기만 한다면 모든 존재의 실상이 자연히 밝게 드러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대각을 이룬 소태산의 심경은 물론 그 내용까지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정풍 교무  원남교당

4월 1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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