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초기 기록물을 톺아보며 새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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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초기 기록물을 톺아보며 새 길을 찾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5.04.21 11:15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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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연구회창건사
(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38호)                

 

제3장  대종사의 구도정성과 고행
<시창 전 14년(壬寅)부터 시창 전 4년(壬子)까지>

대종사께서 한번 원을 발하신 후로는 세월이 지낼수록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낮이나 밤이나 한 생각으로 오직 소원성취의 길을 찾기에 마음을 다하시더니, 11세 되시던 해 10월 15일에 조선의 예법에 의하여 집안 어른들을 따라 영광군 군서면 마읍리 뒷산 선영 시제에 참여하였는데, 시제에 산신을 먼저 제사하고 선조를 뒤에 제사함을 보시고 집안 어른 가운데 예법을 잘 아는 분을 찾아 여쭈었다. “오늘 제사는 그 목적이 선조를 제사함에 있는데, 산신께 먼저 제사하고 선조를 뒤에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집안 어른이 답하기를 “산은 곧 묘소의 주권지라, 그런 까닭으로 주권지의 주재자인 산신을 먼저 제사하고 조상님을 뒤에 제사함”이라고 말하였다. 

(질문) 그러면 산신은 어떠한 권능이 있습니까?
(답변) 산신은 참으로 신령하여 그 조화 능력이 말로 다 형용하지 못할 것이다.
(질문) 산신을 사람이 혹 볼 수도 있겠습니까?
(답변) 정성이 지극한 사람에게는 혹 보이기도 할 것이다.

대종사께서 이 문답을 마치시고 생각하시기를 산신이 이와 같이 훌륭하다면 나의 평생 원하는 바 모든 의심을 이 산신에게 물어본다면 반드시 알게 할 능력이 있으리라 하시고 그날부터 마음속에 산신 만나기를 작정하시었다.
그 후로는 매일 식후에 기어히 산중을 돌아다니며(두류逗留) 산과실을 보는대로 거두시며, 혹은 집안에서 정갈한 음식을 준비하여 가지고 현재 영광군 백수읍 구수산에 오르시어 그 제물을 바위 위(속칭 마당바위)에 벌여놓고 전후 사방을 향하여 하루종일 예를 갖춰 절을 하시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오시기를 매일 과정으로 하시되(혹은 그곳에서 밤을 지내기도 하셨다 함) 비가 오고 눈이 올지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만 4년간, 즉 15세 되실 때까지 하셨으니 그 굳건한(견인불발 堅忍不拔-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함, 뜻을 변(變)치 아니함) 의지와 지극하신 정성이야 다 이를 수 없었다.

 (주註) 마당바위는 구수산 서북쪽 끝 산봉우리 정상에 있으니 대종사의 집이 있는 길룡리(원 영촌)에서 약 10리나 되며 당시 산중 형편은 삼림이 무성하고 맹수가 출몰하여 비록 장정이라도 단독으로는 그 산에 오르기를 싫어하는 때이라 그러함으로 대종사께서 부모님이 만일 아시면 반드시 위험을 염려하여 금지하거나 또는 엄하게 꾸중하실 것을 예측하시고 처음에는 한문사숙(서당)에 가신다 핑계하시고 그 시간을 이용하여 가만히 산 위에 오르시었고 차차 사실이 드러나 어머니께서 그 정성에 감동하여 아버지 모르게 제물(白餠, 흰떡 또는 백설기)을 챙겨주시어 대종사의 기도하시는 데에 많은 후원을 하셨다한다.

 대종사 16세 되시던 해 정월 새해 인사차 처가에 가셨더니 마침 어떠한 사람이 고대소설(<조웅전> 또는 <박태부전>)을 보던 중, 그 소설 주인공이 어떠한 도사를 만나 공부한 결과에 탁월한 정신을 얻어 그 소원을 성취하였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마음속에 큰 변동이 생기었으니 곧 다름이 아니라 지금까지 믿어오던 산신은 만 4개년 동안 그와 같은 정성을 들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보이지도 않는 것은 가히 믿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산신의 정체에 있어서도 그 유무를 확실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인즉 이제부터는 저 소설의 주인공과 같이 도사 만나는 데에 정성을 드린다면 도사는 유형한 사람인 동시에 그 교제가 쉬울 뿐 아니라 이 수많은 인류 중에 반드시 없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시고 예전에 산신 만나고자 하던 결심을 다시 도사 만나기로써 전향하시었다. 그리하여 낮이나 밤이나 한 생각이 항상 도사 찾는데 그치어 길 가다가 이상한 걸인이 있을 때는 이것이 혹 도사가 아닌가 하고 반드시 청하여 같이 집에 모시기도 하시며, 또는 어떠한 곳에 숨은 도사가 있다는 말을 들으실 때는 그것이 혹 도사가 아닌가 하고 반드시 방문도 하며 혹은 청하여다가 같이 지내기도 하니 16세부터 22세에 이르기까지 만 5개년간 그러한 무리의 연락이 실로 빈번하였다.
김선명 영광교구장

큐알코드를 찍으시면 불법연구회창건사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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