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숙명을 떠안은 30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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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숙명을 떠안은 3000일
  • 한울안신문
  • 승인 2025.05.22 17:27
  • 호수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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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할매들 곁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원불교다. 이분들의 기도가 3000일까지 왔다. 3000일의 힘에 대해 가장 상징적인 사례 딱 하나만 말하겠다. 우리는 화목 아침평화행동을 원불교 법회와 개신교 기도회로 진행한다. 법회 시작은 영주 삼독으로 한다. 들여다본 사람은 알겠지만 영주의 뜻도 심오하지만 영주는 참석자들이 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게 묘미다. 그런데 교도든 아니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영주 삼독을 일심으로 한다. 그 운율이 참 좋다. 영주 삼독의 운율은 사드철회 갈망이 종교로 승화했음을 보여준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감탄한다. 우리의 투쟁이 아름답다고.
백창욱 목사예수살기
백창욱 목사
예수살기

 

 

2025년 5월 15일 낮, 왜관 캠프캐롤 앞, 사드철회평화회의 일꾼들, 연대자들은 ‘소성리 사드반대 현수막 훼손 절취 미군범죄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소성리 할매들도 함께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책위 대표들은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기지 정문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철문은 굳게 잠겨 있고, 나오라는 미군놈들은 나타나지 않고 중재한답시고 경찰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때 소성리 할매들은 기지 철문 앞에 다시 주저앉았다.

워낙 연로하셔서 오래 서 있을 수 없기도 하지만 투쟁할 때 주저앉는 건 할매들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할매들이 현수막을 절취한 미군범죄에 분노하여 다시 투쟁일선에 나서겠다는 의지표명이기도 하다.

2017년 소성리에 사드가 들어온 후부터 지금까지 할매들은 이렇듯 신산한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해보라, 사드 때문에 완전히 뒤바뀐 일상을 살게 된 사람들 마음이 어떤 심정일까를. 그래서 할매들 뿐만 아니라 투쟁에 동참하는 주민들, 연대자들은 모두 집단 우울증에 걸려 있다. 매일 아침 평화행동으로 우리의 의지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소성리 마을 길을 쌩쌩 내달리는 미제놈들 차만 보면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어쩔 수가 없다. 그걸 막기라도 하면 또 쏜살같이 달려오는 부역경찰이 채증하고 말로 협박하고 마침내는 무력으로 밀어내는 정해진 수순을 겪는다. 최근에는 이놈들이 버젓이 우리가 애써 걸어놓은 현수막을 절취했다. 미군놈 의식이 이래도 된다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이 나라가 진정 미제의 식민지구나 하는 한탄이 터져 나온다. 이런 생활이 10년이다. 할매들 역시, 그 제어할 수 없는 분노의 심정이 미제놈들을 대면하면 주저앉아서 농성에 들어가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듯 고단한 할매들 곁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원불교다. 이분들의 기도가 3000일까지 왔다. 2017년 3월 11일에 시작한 기도다. 그때만 해도 시작했으니 3000일을 채워야지 한 사람은 결코 한 사람도 없다. 하다보니 3000일, 8년하고 80일이 된 것이다. 그 3000일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3000일의 힘에 대해 가장 상징적인 사례 딱 하나만 말하겠다. 우리는 화목 아침평화행동을 원불교 법회와 개신교 기도회로 진행한다. 법회 시작은 영주 삼독으로 한다. 들여다본 사람은 알겠지만 영주의 뜻도 심오하지만 영주는 참석자들이 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게 묘미다. 그런데 교도든 아니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영주 삼독을 일심으로 한다. 그 운율이 참 좋다. 영주 삼독의 운율은 사드철회 갈망이 종교로 승화했음을 보여준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감탄한다. 우리의 투쟁이 아름답다고.

3000일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나는 그냥 간단히 말한다. 원불교니까 가능했다고. 또 소성리가 정산종사 탄생지니까 가능했다고. 그리고 정산종사가 처음에 대종사를 만나기 위해 그 길을 넘지 않았으면 원불교도 없었다. 그렇다면 소성리는 정말 거룩한 땅이다. 사드기지로 둔갑해버린 구도길은 진정 거룩한 길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길을 기필코 복원해야 한다. 원불교는 역사의 숙명을 떠안은 것이다.

어떤 역사의 숙명인가. 전쟁기지로 둔갑한 이 땅을 원래대로 평화자주의 땅으로 돌리는 일이다. 왜 원불교인가? 불교도, 가톨릭도, 개신교도 다 밖에서 왔다. 원불교만이 안에서 나왔다. 순수토종이다. 그래서 원불교는 우리 땅을 평화자주의 땅으로 돌리는 일에 최적격이다. 그렇다면, 원불교에 역사의 숙명을 해결하라는 숙제를 주기 위해 소성리에 사드가 들어온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다. 개신교도인 나는 원불교가 역사의 숙명을 잘 수행하도록 옆에 서 있을 작정이다.

끝으로 박형선, 강현욱 두 교무님과 원평화 교도들을 빼놓을 수 없다. 타인이 한 종교를 보는 인식은 어디에서 오나?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에게도 온다. 즉 교무와 교도들을 통해 원불교를 인식하는 것이다. 거기서 긍정부정, 호불호가 나온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지독하게 추운 날도 변함없이 소성리를 지키는 두 교무님이 3천일의 주인공이다. 두 분은 성실의 아이콘이다. 게다가 때마다 연대와서 자리를 채우고 밥공양을 해주는 원평화도 든든한 동지들이다. 이런 선한 동력이 어우러져서 3천일이 된 것이다. 모두 하나하나 소중한 공력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공력이 합하여서 반드시 사드를 철거시키고 평화의 열매를 거둘 것이다. 3천일을 축하한다는 말은 어색하다. 그저 두 손을 가슴에 모아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대들과 함께 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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