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 없이 교화하며 살겠다.’ 하여, 그의 출가 서원은 “교당 교무로 시작해 교당 교무로 끝을 맺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서원의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누군가는 교화 이론을 세우는 일에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교화하겠다’는 의지와 ‘잘해봐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간절히 매달려 왔던 40여 년의 세월이, 그렇게 온전하게 흘렀다. ‘교화단을 이해해 교화를 확산시키고, 교화단을 통해 모두가 영적 성장을 이뤄내기’를 바라는 김일상 원로교무의 뜻을 한울안신문 기획에 담고자 한다.
교화단원을 어떻게 공부시킬 것인가? 성불제중의 서원을 심고 키워주는 것이 부처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계문 계율을 철저히 지키도록 공부시키는 것입니다.
법위등급에서 보통급, 특신급, 법마상전급 내용 중 공통분모의 하나는 계문입니다. 각 급의 10계문을 일일이 실행하라 했습니다.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보통급은 “보통급 십계를 받은 사람의 급”이라 했고, 특신급은 “보통급 십계를 일일이 실행하고, 특신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라고 했고, 법마상전급은 “보통급 십계와 특신급 십계를 일일이 실행하고 법마상전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라고 하여 계문을 지켜야 법위가 향상되고 불보살이 되어간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부처님의 대열에 합류하는 법강항마가 되려면 보통급 10계문, 특신급 10계문, 법마상전급 10계문을 일일이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강항마위에 올라도 심계(心戒)를 두고 공부해야 합니다. 이렇게 법위등급마다 계문이 있고, 이를 잘 실행해야 부처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문을 지키는 것은 불보살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죄고의 구렁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며, “선을 행하여 사회에 무량한 공덕이 나타나(<대종경> 교의품 26장)”게 하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대종경> 수행품 58장)”고 하셨습니다. 오래오래 계속하면 마군에게 항복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계문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계문을 범한 결과가 내 인생은 물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안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삶의 습성이 좋지 않은 원인이 큽니다. 그래서 자기 발전을 위해 종교 신앙을 해야겠다고 종교의 문에 발을 들여놓았다가도 계문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빌미로 다시 옛 생활로 회귀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계문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입니다.
<대종경> 교의품 25장의 법문 일화는 목사 한 사람이 소태산 대종사님을 찾아와 계문에 대한 견해를 말하자 ‘계문을 왜 지켜야 하는지’를 밝게 설명해 주신 법어입니다. 원문을 보며 계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으면 합니다.
계문이 이런 것이기 때문에 자신과 세상을 위해 지키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계문을 일일이 잘 지키고 범하지 않는 공부는 어떻게 할까요? ▷일단 30계문을 모두 외워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 생활에 대조가 됩니다. 그런데 매일 대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워지므로 대조하면 됩니다. ▷반드시 단계별로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급 10계문을 다 지키면 특신급 10계를 지키고, 특신급 10계를 다 지키면 법마상전급 10계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월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문 각 조항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범과 유무(有無)를 알 수 있습니다. 계문에 대한 설명은 <원불교대사전>, 신도형 교무의 <한글로 읽는 교전공부>, 대학원대학교 출판국의 <계문공부길>을 참고하면 됩니다.
▷계문의 범과 유·무를 그날그날 기록하고 꼼꼼히 진실되게 대조해야 합니다. 그날그날 기록하지 않으면 범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없어 과오를 반복하고, 진실되지 않으면 세월만 보내게 됩니다. ▷자주 범하는 것을 유·무념 조항으로 정하여 계문을 범하지 않으려고 적공하는 것입니다. ▷대조하여 진실로 기록하면서 스승, 주변의 인연, 지도하는 분의 감정을 받아야 합니다. 감정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감정을 받지 않으면,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 바르게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고, 자기의식에 빠져 그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선 교당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상시일기를 기재해 온 교도님의 일기에는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계문을 범하지 않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일체의 접촉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살면서 살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이 모를 뿐 직접 간접으로 살생하고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본인이 범하면서도 범하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먹고 사는 한 살생을 벗어나지 못함에도 살생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계문을 범하면서 부처 될 생각을 하거나, 좋은 인연 만나기를 바라거나,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되지 않는 일을 시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계문을 범하면 어떤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중을 위해 살생하는 경우이고, 수행력이 부족하고 업력에 끌리는 경우입니다.
경전 공부를 성실하게 하도록 지도하는 것입니다.
경전은 우주의 원리와 인간 삶의 이야기가 담긴 것입니다. 우주의 원리와 인간 삶의 이야기를 떠나 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일과 이치가 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에 능하게 되면 일과 이치에 밝아져 인생이 평안하고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부처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전이든 인간 삶의 이야기를 떠나 서술된 것은 없습니다.
종교를 찾는 대다수의 사람은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종교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종교의 문을 연 성자들은 하나같이 사람이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김일상 원로교무
5월 30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