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의 두 가지 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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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의 두 가지 큰 길
  • 한울안신문
  • 승인 2025.06.08 13:59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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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야 할 길을 소태산은 ‘인생의 요도’라고 했다.
종교적으로는 ‘인과보응의 신앙문’이라고 했다.
‘지은보은’, ‘무아봉공’의 길이고 ‘사은 사요’의 길이다.
감사와 은혜의 길이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야 할 공부 길을 소태산은 ‘공부의 요도’라고 했다.
종교적으로는 ‘진공묘유의 수행문’이라고 했다.
‘정각정행’, ‘불법활용’의 길이고 ‘삼학 팔조’의 길이다.
마음공부의 길이다.
마음이 맑아야 은혜가 보이고 은혜에 감사하면 마음도 맑아진다.
마음을 비우면 은혜가 채워지고 보은에 정성을 다하면 마음도 비워진다.
봉공하면 무아가 되고 무아가 되면 저절로 봉공이 된다.
일심이 되면 불공이 되고 불공을 하면 일심이 된다.
마음공부와 지은보은이 둘이 아니고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가 둘이 아니다.
일원으로 하나인 하나의 길이다.
가면 갈수록 자유롭고 은혜로운 행복한 성불의 길이다.
견성하면 이 길이 환히 보이고
길을 찾았으면 기쁘고 씩씩하게 이 길을 가면 된다.
다른 길은 눈에 차지 않는다. 가면 간만큼 부처다.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
신앙문 수행문

소태산은 ‘교리도’에서 부처가 되는 길을 두 가지로 제시했다. 하나는 ‘인과보응의 신앙문’, ‘진공묘유의 수행문’으로 표현했다. 하나는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는 ‘지은보은’의 길이고, 또 하나는 마음공부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대로 행동하는 ‘마음공부’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은 ‘사은사요’를 핵심 내용으로 하고 수행은 ‘삼학 팔조’를 핵심으로 삼는다.
“사은·사요는 인생의 요도요, 삼학·팔조는 공부의 요도인 바, 인생의 요도는 공부의 요도가 아니면 사람이 능히 그 길을 밟지 못할 것이요, 공부의 요도는 인생의 요도가 아니면 사람이 능히 그 공부한 효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지라, 이에 한 예를 들어 그 관계를 말한다면, 공부의 요도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과 같고, 인생의 요도는 환자를 치료하는 약재와 같나니라.
<정전>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 

소태산은 <정전> 교의편에서 사은·사요의 신앙과 삼학·팔조의 수행에 대한 교리를 서술하고 바로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라는 내용으로 신앙과 수행을 하나로 묶어서 병진해야 함을 말하고 이 둘이 서로 긴밀히 연계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신앙과 수행을 둘로 나눠서 이해하거나 순서상 선후 관계를 나눠볼 우려를 방지하고자 한 것 같다. 소태산이 직접 쓴 <정전>이라는 교리서에서 신앙 부분이 먼저 다뤄지고 그 다음에 수행 부분이 다뤄지지만 이는 단순히 서술상으로 피할 수 없는 현상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교리도’를 보면 신앙과 수행이 완전히 수평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태산은 그냥 ‘인생의 도’, ‘공부의 도’라고 표현해도 될 듯한데 ‘요도(要道)’라는 표현으로 ‘반드시 가야할 길’로서 그가 제시한 신앙과 수행의 핵심 내용을 강조하고자 했다. 또한 ‘인생의 요도는 공부의 요도가 아니면 사람이 능히 그 길을 밟지 못할 것이요, 공부의 요도는 인생의 요도가 아니면 사람이 능히 그 공부한 효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지라’라고 이 두 가지 길을 반드시 병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의술과 약재의 비유까지 동원해서 두 가지가 상호 의존적이고 보완적인 것임을 강조했다. 
한 제자 여쭙기를 “부모 보은의 조목에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유루없이 밟으라.’ 하셨사오니 그것이 어찌 부모 보은이 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공부의 요도를 지내고 나면 부처님의 지견을 얻을 것이요, 인생의 요도를 밟고 나면 부처님의 실행을 얻을지니…” <대종경> 변의품25장


함께 가자 이 길을

한 제자 여쭙기를 “어떠한 것을 큰 도라 이르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천하 사람이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천하의 큰 도요, 적은 수만 행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도라 이르나니, 그러므로 우리의 일원 종지와 사은 사요 삼학 팔조는 온 천하 사람이 다 알아야 하고 다 실행할 수 있으므로 천하의 큰 도가 되나니라.” <대종경> 교의품 2장.
불교의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처럼 소태산은 ‘큰 도’와 ‘작은 도’라는 비유로 방편적 표현을 하고 있다. 소태산은 자신이 제시한 ‘일원 종지(一圓 宗旨)’와 ‘사은·사요’와 ‘삼학·팔조’의 교리가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갈 수 있는 ‘큰 길’이라고 확신했다. 
“…지금 세상의 이 큰 병을 치료하는 큰 방문은 곧 우리 인생의 요도인 사은 사요와 공부의 요도인 삼학 팔조라, 이 법이 널리 세상에 보급된다면 세상은 자연 결함 없는 세계가 될 것이요, 사람들은 모두 불보살이 되어 다시없는 이상의 천국에서 남녀노소가 다 같이 낙원을 수용하게 되리라.” <대종경> 교의품 35장. 
소태산은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라고 ‘개교의 동기’에서 천명한 목적을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라는 교리적 방편으로 실현하려는 초지일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정풍 교무 원남교당

 

6월 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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