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 전 4년(임자 壬子)부터 시창 원년(병진 丙辰)까지
대종사께서 도사 만나고자 하는 생각이 한번 단념되신 뒤로는 마음속에 점점 깊어진 것은 ‘이 일(이 일은 의심을 말함)을 장차 어찌할꼬?’하는 한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생활에 대한 계교심도 혹 있었고, 고생이라는 느낌도 혹 있었지마는 세월이 지날수록 다른 관념은 문득 멍청히 잊으시고 오직 그 한 생각으로써 아침으로부터 저녁에 이르고 저녁으로부터 아침에 이르시며, 이십사오세 되시던 때에는 ‘이 일을 어찌할꼬?’하는 그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되어 점점 혼수상태에 들어가서 행하여도 행하는 줄을 모르시며, 앉아도 앉은 줄을 모르시며, 말하여도 말하는 줄을 모르시며, 음식을 먹어도 먹는 줄을 모르시어 아무 분별력이 없는 허수아비(우상 偶像)같이 멍청한 지경에 이르셨으니 당시의 현황과 외인의 평론은 ‘그 어떠하였던고?’ 대종사의 거처하신 가옥은 수년을 이엉을 개수하지(수즙 修葺)아니함으로 천정에 구멍이 뚫려 비가 새고(삼루 滲漏), 창문과 벽이 무너져(퇴락 頹落)내려 바람과 비를 만날 때는 새는 빗물이 앉은 자리에 질펀하여 마침내는 두 번 이사를 가는 곳마다 그 집이 무너져 내렸고(도궤 倒潰), 아침·저녁 식사는 형편없는 밥(추반악식 麤飯惡食)이라도 능히 계속할 수 없어 끼니를 거를 때가 한두 날이 아니었으며, 그중에 우연한 병고가 발생되어 뱃속에는 거대한 적(積, 뱃속에 생긴 덩어리)이 들어 있고, 온몸에는 종기가 가득하였으며 겸하여 끊임없는 해수기침으로 몰골의 형편없음이 마치 피골상연(皮骨相連)이 되신바, 일반 가족의 애타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근 마을 사람들도 혹은 애석히 여기는 자도 있고, 혹은 전생의 죄업으로 그리 된 것이라고 아는 것같이 말하는 자도 있어 실지 본 여러 사람의 안목에 거의 정신 잃은 폐인의 인증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입정(入定)의 시기이다.
일화
1. 입정 당시의 실경(實景)
대종사께서 그 어느 날에 부인이 간신히 아침밥을 준비하여 밥상을 올리고 아직 공양이 끝나기 전에, 밭에 제초작업이 바쁜 것을 생각하여 급히 나아가 그 일을 마치고 정오가 거의 지난 뒤에 집에 온즉 대종사께서는 그때까지 밥상을 앞에 두시고 밥은 비빈 채로 수저를 놓고 묵연히 앉으셨는데 온 방 안에 파리떼가 모여들어 그 밥과 반찬을 빨아먹고 있는지라.
부인이 혼자 탄식하고 가까이 가서 큰 소리로 대종사를 불러 그 연유를 물으니 대종사 또한 놀라시며 비로소 식사하시던 중 그와 같이 망각된 것을 알으셨다 하며, 또 어느 때는 법성포 시장을 가신다 하고 집에서 출발하사 얼마 되지 않는 선진포(길룡리 구내에 있음) 부근에 가시다가 문득 서서 종일(終日)을 움직이지 아니하시더니 시장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보고 와서 그 말씀을 본댁에 전하는지라.
온 가족은 모두 놀라고 당황해서 곧 가서 모셔왔다 하며, 또 어느 때는 집에 비가 새서 빗물이 앉은 무릎을 적시되 조금도 감각을 모르셨다 한다.
2. 가족의 고민 상태
대종사의 정신이 어느 때에는 혹 분별이 있는 듯하다가 도로 혼돈해지시고, 혹 기억이 나타나는 듯하다가 도로 망각해지시니 가족 중에서 혹 과거 수도인의 조용히 앉아 움직이지 않음(적연부동 寂然不動)이라든지, 입정삼매라든지(삼매三昧는 인도 말이니 우리말로 하면 정(定)에 들었다는 말) 그러한 어구와 전설을 듣고 본 바가 있었다면 당시에 그 어떻게 생각하였을지 알 수 없지마는, 오직 평생에 한 번도 듣고 보지 못한 처음 경험을 당하였으니 어찌 한 때인들 안심을 하였으리오.
그리하여 혹 어느 때는 점집에 물어도 보았으며(문복 問卜), 또는 부인께서는 대종사의 정신회복을 위하여 다년간 뒤뜰에 단을 모으고 매일 저녁에 지성으로 하늘에 기도한 일도 있었다 한다.
김선명 영광교구장
6월 13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