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주는 원기15(1930)년 부터 경성출장소 재가교무를 역임하던 중 전무출신 할 뜻을 밝힌다. 당시 창신동회관은 회원이 점점 늘어 예회 공간이 비좁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공주에게 “경성출장소는 집도 협착하고 유지형편도 어려우니 공주가 집(회관)이라도 하나 마련해 놓고 유지대책을 세워 놓은 뒤에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한다.
재가교무 이공주와 경성회원들은 원기17(1932)년 초에 낙산 너머 앵두나무골의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며, 소태산은 그해 음력 4월 즈음 상경하여 이곳을 둘러보고 “수도원 기지로는 하늘이 주신 곳이다.”며 기뻐한다.
이공주는 원기18(1933)년 6월 8일에 자신의 계동집을 처분하여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서 경성부에 편입된 돈암동 509번지(14평, 垈)와 510번지(571평, 田) 총585평을 매입한다. 이곳이 돈암동회관이다.
돈암동회관에 가는 길은〈회보〉와 잡지〈조광〉의 기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감상」 경성지부 신점기지新占基地 소개기
“번화훤개繁華喧開한 자백홍진紫栢紅塵(경성 시가지)을 다 헤치고 동소문東小門 밖에 나가서서 한 걸음을 돌리게 된다. 동편으로 성곽을 끼고 송림 속으로 찾아들어 울창한 과수림果樹林 속에 하나씩 둘씩 산재散在하여 보이는 인가人家를 지점指占하면서 보이보步二步로 옮겨가면 소종래所從來를 알기 어려운 일곡계류一曲溪流를 만나게 된다. 이 소쇄瀟灑한 물소리에 맞추어 걸음걸음 상진上進하면 울밀蔚密한 과수果樹를 다북 싣고 한적한 지대에 수연邃然한 무릉동천이 전개되었도다.”
(이완철.〈회보〉 제1호, 시창18년(1933) 8월호)
경성지부 참관기
“… 하루 밤을 꼬박 새며 천리운산千里雲山을 돌파하여 어느덧 경성 역두에 가쁜 숨을 내쉬인다. … 경성역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한편 놀래며 반가웠다. … 때마침 경성 교무 이완철씨가 눈에 번적 띈다. … 바로 그의 뒤를 따라 동대문행 전차에 올라섰다. 차창에 비겨 경성 대도의 전모를 대개 살펴본즉 … 북악 남산의 웅장한 자태는 수도지의 형승形勝을 넉넉히 갖추어 있고 정연히 설비된 포도鋪道와 굉장히 건립된 건물은 가히 대도시의 자격을 얻을 만하다. 조망眺望이 다하지 못하여 순간에 동소문 정류장에 내렸다. 동소문 밖에 썩 나서니 고색古色이 창연한 옛 성은 옛 사정을 하소연하는 듯이 처연한 자태를 띄고 서서 … 시름없는 걸음을 완철씨의 안내를 따라 … 성城을 끼고 송림을 헤쳐 가며 한 줄기 산길을 밟아갈 제 … 조그마한 고개를 넘어서니 진수가목珍樹佳木이 우거진 두 언덕 사이로 구비를 쳐 거울같이 흘러오는 벽계수碧溪水, 백년풍상百年風霜에 늙은 한송寒松, 소쇄하게 불어오는 맑은 바람은 물외별경物外別境의 소식을 전해주는 듯하다. … 나무 그늘 구름 그림자가 얽힌 가운데 불법연구회 경성수양원이라는 간판이 희미하게 보인다.”(황대일화. 〈회보〉제30호, 시창21년(1936) 11·12월호)
교주를 생불삼는 ‘불법연구회’의 정체
“기자는 동소문을 넘어 낙타산 북록(北麓: 북쪽 산기슭)에 있는 불법연구회를 찾게 되었다. 계곡을 끼고 좌우의 송림을 바라보며 얼마쯤 올라가니 산 밑에 호화한 신축와가新築瓦家가 방금 만개한 도화桃花 이화梨花에 쌓여 대궐같이 버티고 있다. 문에는 ‘불법연구회 경성지부’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다시 한편에는 ‘수양원’이라는 이상야릇한 문패가 쌍으로 붙어 있다.”(〈조광〉6월호, 1937년)
동소문 버스정류장(노란원), 옛길(노란선)
경성지부 돈암동회관을 내왕하는 길목에 서울 성문의 하나인 동소문이 자리 잡고 있다. 경성역전에서 전차로 이동하다가 창경원에서 버스로 환승하여 동소문에서 내려(1941년 7월 이전까지), 도보로 성城을 끼고 산길을 따라 가다가 계천을 만나 조금 올라가면 돈암동회관에 이르는 노정이다.
공동연구자 방길튼·박혜현·윤지승
6월 20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