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의 종교관 계승하고 구체화하는 예비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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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의 종교관 계승하고 구체화하는 예비작업
  • 한울안신문
  • 승인 2025.06.22 17:17
  • 호수 13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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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종교경전 선집』 편저 
이혜화 교도

5년 전 이즈음이었다. “소태산의 진면목을 그려내고 싶었다”라고 저자는 말했다. 대각을 이룬 주세불 성자 소태산은 ‘가장 완벽한 생애를 살고 간 사람’임을, 그는『소설 소태산』(2020)을 통해 재현했다. 저자 이혜화(경식, 일산교당) 교도와의 첫 번째 인터뷰였다.
그리고 인연이 다시 닿았다. 후속 작업으로 『정산 송규 평전』(2021)을 펴낸 저자는, ‘스승(소태산)이 부여한 사명을 구현하기 위한 제법주(정산)의 헌신을 통해 (교단사적) 위기와 시련을 극복할 교훈과 지혜를 얻기를’ 갈망했다. 정산 평전을 통해 소태산의 또 다른 면면을 그려낸 그와의 만남, 그 여운이 깊었다. 그리고 『주요종교경전 선집』을 편저한 그를 몇 해 만에 다시 만나러 가는 길, 생각 하나가 더해진다. 무엇이 그와의 인연을 닿게 하는 것일까.

『주요종교경전 선집』을 편저하게 된 계기를 머리말에서 밝혀놓으셨습니다. ‘소태산의 종교관을 계승하고 구체화하는 예비작업’을 시도하신 계기나 동기가 있다면.
“대종사님이 대각을 이루시고 나서 각 종교의 경전을 열람하신 후 「나의 안 바는 옛 성인들이 또한 먼저 알았도다.」 하신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확인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다른 종교의 경우도 그렇겠지만, 특히 원불교도의 입장에서는 소태산 교법이 여타 종교의 교리보다 우월하다든가, 이미 모든 종교의 교리를 통합한 원만한 법이라든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은 우리 교법이면 충분하니까 굳이 다른 종교에 대해서 알아보거나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가지게도 하지만, 이는 대종사님 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요. 우리 교전을 대종사님은 교과서라고 하셨고, 여타 경서들은 부교재(참고서)라고 하신 뜻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목차를 보면 유·불·도교 외에도 기독교, 개벽종교 경전 선집에 어떤 기준이나 원칙을 두셨는지.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님이 유·불·도(선)교는 물론 개벽종교(동학, 증산교)의 경전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인증하신 기록은 제법 있습니다. 다만 기독교에 대해서만은 명시적인 내용이 없는 셈이죠. 기준은 첫째 원불교법(동원도리)과 잘 어울리는 교리에 방점을 찍었고, 둘째는 그들 종교의 본질과 특색을 잘 드러내는 부분을 선별하자 했지요. 언뜻 모순되는 듯하지만, 공통점만 부각한다면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을 놓칠 수 있거든요. 이 차이점이 의두·성리의 공부자료가 될 것으로 봅니다.”

부록 또한 흥미 있는 부문입니다. 부록에 실린 내용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나 기억에 남는 부문이 있다면.
“저는 『무함마드 약전』을 강조하고 싶어요. 대종사님이나 정산 종사님이 언급한 바가 없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는 종파가 이슬람이란 것 또한 부인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이슬람 경전을 발췌하거나 요약할 능력이 없어요. 차선책으로 이슬람을 이해하고 그 교리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름길이 교조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전기라고 본 것이죠.”

종교 간 통찰이라는 견지에서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 경전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사상이나 가치는 무엇일까요.
“저는 세계 종교를 셋으로 나누어 이해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사막을 배경으로 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고 하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죠. 그들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유일신 신앙으로 묶였고 신앙의 대상도 같은 신(야훼, 여호와, 알라)이죠. 또 하나는 인도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힌두교·불교·자이나교죠. 이들은 신관으로 보면 무신론 내지 비신론 혹은 범(재)신론이지만 윤회, 업, 해탈, 깨달음 같은 교리를 공유하죠. 다른 하나는 중국 대륙에서 황하나 양자강을 배경으로 형성된 유교와 도교라고 하겠죠. 이들은 신앙보다는 인간과 사회 혹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중시하여 윤리학, 철학으로 평가받는 종교죠.”
“소태산 대종사는 이들 종교의 교리를 일원(一圓)으로 취합하고 혹은 교조들의 뜻을 인류의 구원으로 수렴하였죠. 그 방법론에서 우리는 신앙문 쪽은 아브라함의 종교들에서 배우고, 수행문은 인도 종교들에서 본받고, 윤리적 실천 방식은 중국 종교에서 수용하고, 여기에다 시대적 과제로서 개벽종교의 후천개벽 사상을 계승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원만할 것입니다.”

현대사회와 접목시킨다면, 경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접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기존의 종교 경전들을 열람하신 후 「나의 안 바는 옛 성인들이 또한 먼저 알았도다.」라고 하셨다 했지만, 거기에 덧붙인 말씀이 「진리의 심천(深淺)과 시대의 적부적(適不適)이 있다」입니다. 성인들이 깨닫고 안 바가 수준 차가 있다는 것과 더불어 시대에 맞는 것과 안 맞는 것이 있더란 것입니다.”
그는 이 뒷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교법)라 해도 수천 년 전에 적용되던 것을 현대에 와서까지 기계적으로 답습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현대를 후천개벽의 시대로 인식하고 보면 더욱 그렇죠. 예컨대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 하면, 아브라함 종교의 신본주의나 유교의 가부장적 질서나 불교의 출재가 차별주의 같은 것은 반시대적이죠. 소태산이 사요(四要)에서 강조한 시대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 『정전』 <법위등급>에 따르면 출가위 항목에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를 정통하며」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항마위부터는 이 책이 필독서가 될 법도 하죠.
넓게 보면 젊은이를 포함한 모든 원불교도가
교법을 공부하는 데 부교재(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편저자로서 이 책이 어떤 통찰이나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 권위주의적 종교의 시대가 저물고 탈종교 시대에 와 있다고 합니다. 다음 단계는 무종교일까요? 어느 교무님은 다음 단계가 통종교라고 합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고 개인주의와 다원주의가 확산하면서, 특정 종파의 경직된 교리에 대한 맹목적 순종은 가고 그 대안으로 보편 윤리에 기반한 통종교적 흐름이 대세를 이루지 않을까요? 이번 작업도 통종교적 흐름을 선제적으로 대비하자는 뜻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원불교도 절대주의적 도그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역사가 겨우 100년 지났을 뿐인데도 근본주의적 행태가 언뜻언뜻 보이는 건 걱정스럽습니다.”

그동안의 저술 계보를 소개해 주신다면. 더불어 계획하고 있는 후속 작업이 있으신가요. 
“저의 저술 작업은 원불교 관련 저술과 그 밖의 저술로 양분되는데, 원불교 저술만을 놓고 보면, 연구서로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 『원불교의 문학세계』가 있고, 평전으로 『소태산 평전』 『정산 송규 평전』 『대산 김대거 평전』이 있고, 소설로 『소설 소태산』, 교화서로 『종교와 원불교』 『용과 봉이 있는 풍경』, 그밖에 이번에 낸 『주요종교경전 선집』을 비롯하여 편저도 몇 권 더 있죠. 두 가지는 수정증보판도 냈고요. 힘이 남아 있다면 하고 싶은 작업이 하나 있는데 아직은 비밀로 해 두고 싶습니다(웃음.)”
 
이 책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읽히길 바라시는지, 개인적인 바람이 있으시다면.
“정전 <법위등급>에 따르면 출가위 항목에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를 정통하며」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항마위부터는 이 책이 필독서가 될 법도 하죠. 넓게 보면 젊은이를 포함한 모든 원불교도가 교법을 공부하는 데 부교재(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번역문의 경우 세속화한 구어체, 즉 현대인에게 보다 친숙한 용어와 문체를 쓰려고 고심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진부하고 따분한 책을 누가 읽을까 싶기도 하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지혜와 기쁨은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신세계죠.”
 
에필로그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 위축되는 건강을 견뎌내는 일 또한 버거웠을 그가, 어느 때는 일주일 어느 때는 보름 동안 한 발자국도 꼼짝 못 할 때가 있었다. 경전 한 귀가 해오(解悟)되지 않을 때, ‘나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한 상태’로 독자들에게 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석을 달면서 덧붙이거나 덜어내고 싶은 유혹도 컸다.
1년 8개월여를 『주요종교경전 선집』 작업에 매진하면서 “(작업)하다가 떠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는 이혜화 교도. 인터뷰 말미, 앞서 스친 생각이 머문다. 무엇이 그와의 인연을 닿게 하는 것일까. 분명, 소태산이다. 

이여원 편집장 yeowon815@gmail.com

 

 

6월 2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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