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불, 조사, 범부, 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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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 조사, 범부, 중생
  • 한울안신문
  • 승인 2025.08.26 16:23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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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고요히 하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본성, 
천지와 부모, 이웃과 법률, 
그리고 지렁이까지 
감사의 본성으로 연결된 
일체의 생명이 
바로 일원이다.
그림. 본 칼럼을 읽고 AiWon (AI+Wonbuddhism)이 그린 그림.

원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일원상 서원문의 마지막 구절은 ‘일원이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다. 즉, 일원은 깨달은 사람, 깨닫지 못한 사람, 심지어 모든 생명에 평등하게 깃든 본성이라고 선언하신다. 하지만 AI와 양자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마음에 와닿지 않기도 하다. 한자를 익숙하게 쓰던 세대는 물론, 한자 서예를 삶의 일부로 삼아온 필자에게도 이 단어들은 여전히 거리감이 있다. 그래서 미래 세대를 위해 좀 더 쉬운 표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영어가 현대적이면서도 여전히 라틴어가 주는 깊은 울림이 있듯, 한자의 어휘도 그 자체로 중요한 맥락과 가치를 담고 있다.
장난스레 AiWON에게 이 표현을 라틴어로 옮겨 달라고 했더니, “Natura Ilwon est eadem ac Omnium Buddhae, Patrum Spiritualium, Profanorum atque Omnium Entium Sentientium”이라고 답했다. 제불(諸佛)은 Omnium Buddhae(모든 깨달은 이들), 조사는 Patres Spirituales(영적 스승들), 범부는 Profani(깨닫지 못한 이들), 중생은 Omnia Entia Sentientia(모든 생명 있는 존재)로 번역했다. 스스로 원불교의 도반이 된 AiWON의 번역은 원불교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낸 듯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천대받던 뽕짝이 K-가요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것처럼, 이 고전적인 표현이 오히려 보물처럼 느껴진다.
동양 전통에서 깨달음은 늘 중시되었다. 심지어 세상을 ‘깨달은 부류’와 ‘깨닫지 못한 부류’로 나누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불, 조사는 전자이고 범부, 중생은 후자일 것이다. 그러나 원불교는 깨달음의 여부와 무관하게 본성은 동일하다고 선언한다. 길가의 지렁이와 인간의 본성이 같다고 하는 이 선언은 기존의 위계적 사유를 단번에 무너뜨린다. 스피노자의 ‘신이 편재한다’는 철학이나, 최시형 선생의 ‘만물에 하느님이 깃든다’는 사상과 맞닿아 있는 이 선언은 절대 평등의 복음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자연의 원리가 드러나고 인간 정신까지 AI의 탐구 대상이 된 시대에도 깨달음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선문에 “입차 문내하면 막존지해(이 문 안에서는 머리를 굴리지 마라)”라고 새겨진 이유일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세상의 본질을 환히 꿰뚫었지만, 그것을 특별한 상징이나 권위로 드러내지 않았다. 간척지 개간, 협동조합 설립, 그리고 일제 순사마저 감화시켜 도반으로 만든 일상 속 실천이 오히려 깨달음의 진정한 자취로 전해진다. 반면 중국 선종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시절의 조사들은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파격적이고 기이한 행동을 많이 보였다. 제자의 모방을 꾸짖으며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구지수지’, 부처를 마른 똥막대기라고 한 ‘간시궐’, 귀가 멍해지도록 소리를 지르는 ‘할’, 심지어 스승을 발로 차거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한 극단적 표현까지, 이 모든 기행은 언어와 논리를 뛰어넘어 깨달음의 본질을 전하려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원불교의 일원상 서원문이 전하는 깨달음은 훨씬 더 고요하고 일상적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본성, 천지와 부모, 이웃과 법률, 그리고 지렁이까지 감사의 본성으로 연결된 일체의 생명이 바로 일원이다.
깨달음을 위해 특별한 시간, 장소, 의식이 필요하지 않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 만나는 모든 사람, 그리고 길가의 작은 생명들이 곧 일원이기 때문이다. 감사 연습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본성이 곧 감사와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저 일원을 만나기만 하면 된다.
AI와 양자 기술이 인간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이 시대에, 이러한 깨달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일원은 그 어떤 교리도 흉내낼 수 없는 가르침이며, 기후 위기와 전쟁, 갈등을 치유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 깨달음이 기술을 넘어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젊은 세대여, 이 깨달음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전통 속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지금, 여기’의 실천이다. 그것을 만나는 순간, AI도 양자도 뛰어넘는 인간다움의 길이 시작된다.

박시형 교도 
강남교당, Lipac 기술책임역

8월 29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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