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박사’의 서원을 키운 곳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경길에게 공주(共珠)라는 법명을 주어 ‘세계가 함께 보는 구슬’이 되는 서원을 심어 준 후, 이공주家(계동 15-3)에서 이공주의 30회 생일날 ‘문학박사’가 되려는 꿈을 세상을 구하는 ‘도덕박사’가 되도록 확장시킨다. (『구도역정기』구타원 이공주 법사편)
성불을 촉구하여 여성 지도자로 세운 곳이다.
소태산은 이공주에게 ‘어서 성불하여 불우한 여성을 맡아 달라’는 당부의 편지에 이어, 성불을 목적하는 기관을 이끄는 거진출진(居塵出塵)이 되도록 촉구한다. (청하문총 2, 『세계가 함께 보는 구슬』) 이에 이공주는 계동 집에 거주하며 경성출장소 주무와 재가교무 역할을 수행한다.
미생전(未生前)의 일원상 자리에 발심을 일으킨 곳이다.
소태산은 계동 15-3 소재의 이공주에게 “일구(一口)로 세계를 다 마셔버리고 항상 홀로 드러나 있는 물건이 존비귀천(尊卑貴賤)도 바라거나 싫어함이 없고, 생사에도 관계함이 없는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라고 물으니 “미생전(未生前)입니다.”라고 답하는 꿈속의 대화를 편지로 보내어 마음공부에 발흥토록 한다.
일기법을 제시하여 시행토록 한 곳이다.
원기10년(1925) 음력 3월에 일기법을 비롯한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 발표하고, 익산본관에서 원기10년(1925) 음력 5월 6일에 제1회 정기훈련(을축하선)을 시행한다. 소태산은 당시 견지동 14번지에 거주하는 이공주에게 보낸 을축(1925년) 음력 2월 20일자 편지에서 “매일 일기(日記)하는 법식(法式)을 보내니 이대로 일기하였다가 후일 상고(詳考)하기로 합시다.”라며 일기 시행을 촉구한다. 그렇다면 경성회원 이공주는 ‘일기법의 첫 시행자’가 된다.
또한 원기13년(1928) 음력 5월 ‘단원성적조사법’을 제정하여 매월 16일은 단회날로 정하고 매월성적조사를 하도록 한다. (〈월말통신〉제1호) 이후 음력 8월 17일에 소태산 대종사 상경하자 이공주는 ‘단원 매월매일 성적조사표’ 인쇄비용을 부담하며, 음력 9월 16일 경성출장소 단회에서 소태산을 모시고 이를 실시한다. (〈월말통신〉 제7호 광고) 이처럼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은 ‘단원 매월매일 성적조사’ 일기법의 첫 시행지이다. 그리고 계동 거주 이공주는 이를 실행한 감상담 ‘매일 성적조사법 이행에 대하여’를〈월말통신〉제19호(원기14년 9월호)에 발표한다. 그렇다면 계동 이공주家는 ‘일기법 시행의 시초요 시범 도량’이라 할 것이다.
계동연구회로서 예회와 야회의 공부처이다.
이공주家는 사가(私家)이면서도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 이외에서 예회를 진행한 곳이며 또한 야회를 연 곳이다. 일명 ‘계동연구회’로서 공가(公家)로 사용하였다. 이공주의 집에서 원기14년(1929) 음력 1월 7일에 연 ‘계동(桂洞) 야회(夜會)’는 불법연구회 야회의 첫 시도이다. 이공주가 주재하는 계동 야회는 예회의 연장으로 한 명이라도 대상이 있으면 진행하였다.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으로 ‘강자·약자의 진화상의 요법’을 부연한 곳이다.
원기13년(1928) 윤 2월 26일(4월 16일) 오전 10시경 계동 이공주家 사랑채에서 예회를 연다. 이때 법설 중 하나가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다. 약자인 갑동리와 강자인 을동리로 비유하여 약자가 강자를 대할 때 지혜로 헤쳐 나가는 길을 명시하였고 강자가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도 제시한다. 약자인 식민지배의 조선이 집단 지혜(공동 연구력)를 통해 강자되는 길을 밝히며, 일제(日帝)로 상정되는 강자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강자로 진화해야 그들의 미래도 열리는 도를 제시한다. 원기13년(1928) 음력 5월에 발행한 <월말통신> 제1호에 이공주 수필의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 게재되며, 최초로 공식 기록된 소태산의 법문이다.
경성회원의 발원장 제출처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13년(1928) 음력 6월 6일에 계동 이공주의 집에서 예회를 보며 회원 각자에게 ‘급선무의 발원장’이라고 제목을 쓰고 각자의 소망을 제출토록 한다. 급선무의 발원장을 받아본 소태산은 “만일 … 보통사람들의 무리한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였다면 나도 당장에 만족할 대답을 줄 수가 없을 터인데 다행하게도 내가 능히 가르쳐 줄 수 있는 법을 알기가 소원이라 하였으니 … 내 그대들의 소원대로 가르쳐 주리니, 오늘의 신성만 변치 말라.”(청하문집 1, 『금강산의 주인』)라고 당부한다.
이처럼 이공주家는 소태산 대종사가 이공주에게 ‘도덕박사’의 서원을 세우고, 성불의 기관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도록 촉구하였고 미생전의 일원상 경지를 격동시킨 사서(師書, 편지)의 정을 느끼는 도량으로 가다듬고, 일기법을 제시하여 시범 시행토록 한 ‘일기 시행처’로 가꾸며, ‘계동연구회’라 칭하여 예회를 본 ‘마음공부의 법석’으로 빛내야할 것이다. 특히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 설해진 현장법설을 통해 인류가 나아갈 세계평화의 길을 도모하는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의 도량으로 삼으며, 발원장을 제출토록 한 뜻과 야회를 처음 시작했던 공부심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이다. 이공주家의 사랑채는 소태산의 유숙처요 예회를 연 법석이요 이공주가 주관한 야회 도량이다. 직사각형 대지의 이공주家는 폭이 짧은 쪽이 남북 방향으로, 안채와 사랑채 사이 햇살 잘 드는 뒷담 쪽에 장독대가 있었을 것이다.
공동연구 방길튼·박혜현·윤지승
10월 24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