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에는 어찌할 것인가?” 하시고 묵묵히 8인의 답변을 기다리시니, 8인 등이 모두 일심을 모은 후 각각 말하기를 “저희 등이 만일 중도에 변심이 있는 때는 즉시 생명으로써 속죄하여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하였다. 그 후에 내진이 어떠한 사람의 유혹을 당하였든지 이전 신심이 변해져서 다시 주색에 방탕하고 패류(悖類, 말이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고 거칠며 염치없는 무리)를 상종하며 도리어 대종와 일반 동지를 훼방함이 심한지라, 때에 김성구가 그 광경을 보고 내심에 생각하기를 ‘전에 내진이가 그와 같은 중한 맹세를 하고 지금 저와 같이 변심 행동을 감행하니, 그 때에 서약한 바가 영험이 있다면 내진의 신변에 반드시 어떠한 죄벌이 있을지니 이제 내진에 대한 영험 유무를 보아서 장차 나의 신앙도 결정하리라’하고, 어느 날 대종사를 뵈옵고 내진의 변심 상황을 보고한 후 물어 말씀하되 “전에 내진이가 그와 같이 중한 맹세를 하고 지금 저렇게 변심을 하였으니 그 사람의 전도(前途)가 장차 그 맹세와 같이 되겠습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 오늘에 있어서 내진의 전도를 미리 판단은 하지 않으나, 내진이가 그 맹세를 할때에 보통 농담의 말이 아니고 만일 진심으로써 하였다면 그 말 한마디가 극히 중하고 어려운 바가 있나니, 어찌 무단한 허언으로만 생각하리오.” 하시었다.
그 뒤 얼마를 지나지 아니하여 내진이가 취주(醉酒, 술에 취하다)한 끝에 돌연 급병이 발생하여 하룻밤 새에 드디어 사망하는지라, 성구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송구하여 다시는 다른 의아(疑訝, 의심쩍어 믿지 못하는 마음)를 내지 못하게 일심으로써 복종하였고, 그때에 참예하였던 다른 동지들도 모두 두렵고 무서워하여 처음 믿음에 더욱 큰 도움이 되었다.
제9장 단원의 첫 조직
<시창 2년(정사 丁巳)>
대종사께서 일찍이 조단 방법을 강구하사 장차 시방세계 모든 사람의 통치 교화의 법을 제정하셨으니, 그 요지는 오직 한 선생의 가르침으로써 원근 각처에 흩어져 사는 천만 사람을 고루 훈련하는 빠른 방법인바, 이제 그 대략을 말하자면 건(乾)·감(坎)·간(艮)·진(震)·손 (巽)·이(离)·곤(坤)·태(兌)·중앙(中央)을 응하여 9인으로 1단을 삼고 단장 1인을 더하여 9인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 감독케 하며, 9단장이 구성되는 때는 9단장으로 1단을 삼고, 단장 1인을 더하여 아홉 단장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 감독케 하되 <각항저방심미기두우여허위실벽규루위묘필자참정귀류성장익진(角亢氐房心尾箕斗牛女虛危室壁奎婁胃昴畢觜參井鬼柳星張翼軫)> 이 28자의 순서를 응하여 처음 9인 단장을 각(角)장이라 칭하여 1각 2각으로 9각장에 이르고, 9각장의 단장을 항(亢)장이라 칭하여 1항 2항으로 9항장에 이르며, 9항장의 단장을 저장이라 칭하여 1저 2저로 9저장에 이르되, 이상 단장도 이어 나오는(계출 繼出)대로 이와 같은 모양(동양 同樣)으로 하나니, 다시 그 지도의 순서를 말하면 각장은 건·감·간·진·손·이·곤·태·중앙의 번호를 가진 9인을 통치하는 단장이요, 항단은 9각장을 통치하는 단장이며, 저장은 9항장을 통치하는 단장인 바, 이상 단장의 통치도 이와 같이 28자의 번호를 따라서 기천기만(幾千幾萬)의 다수라도 지도할 수 있으나, 그 지도하는 강령을 또 다시 말하면 항상 9인에 지나지 않는 간이한 조직이며, 단의 종류에 있어서는 그중에 특별히 정수위단과 예비 수위단이 있고, 또는 모든 사람의 처지와 발원과 실행을 따라 전무출신단, 전무출신기성단, 거진출진단, 보통단 합 6종으로써 구분한 바, 대종사께서 먼저 8인을 선택하신 것도 오직 이 조단을 예비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7월 26일에 비로소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하셨으니, 그 정원은 아래와 같다.
단장: 대종사, 건: 이재풍, 손: 박경문, 감: 이인명, 이: 박한석, 간: 김성구, 곤: 유성국, 진: 오재겸, 태: 김성섭, 중앙: 송도군
주註) 송도군은 원래 경북 성주 사람으로서 연소(年少) 출가하여 도덕의 정로를 찾지 못하고, 사면으로 방황하다가 무오(戊午 1918년) 삼월경에 대종사의 슬하에 오게 됨에 따라서, 동년 7월경에 드디어 중앙 단원으로 정하였다. 단의 상세 내역은 별책 단규에 있음으로 이에 생략하였음.
김선명 영광교구장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1월 14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