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信)·분(忿)·의(疑)·성(誠)은 만사 성공의 원동력입니다. 진리를 깨치려고 하는 사람은 신·분·의·성이 없어서는 절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사업에 성공하려는 사람도 신·분·의·성이 없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신·분·의·성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삼학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신·분·의·성은 수행의 동력이자 추진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信)은 만사를 성공하게 하는 마음을 결정하는 원동력입니다. 분(忿)이라는 것은 용장한 전진심을 이름인데 만사를 성공하려 할 때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의(疑)는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 함이며 그래서, 만사를 이루려 할 때 알아내는 원동력입니다. 성(誠)은 간단없는 마음으로 만사를 이루려 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 때나 이 신·분·의·성이 필요합니다.
신(信)이 제일 먼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 삶은 전부 다 신(信)을 바탕해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 ‘신(信)’의 바탕이 서지 않으면 어떠한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떠한 실행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信)이 있고나서 분(忿)·의(疑)·성(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忿)을 말씀하실 때, ‘성내다’는 뜻의 분 자를 쓰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분(忿)을 일상에서 분발(奮發)한다는 뜻의 낱말인 분발할 ‘분(奮)’자를 쓰지 않으시고 그보다 더 강한 마음인 ‘성내다’는 뜻의 분(忿)자를 쓰셨습니다. 거기에는 분발하되 더 강하게 분발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캄캄하고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여기서 어떻게든 벗어나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죽자 살자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이 분(忿)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분(忿)이라는 것은 그냥 분발 정도가 아니라 그런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의(疑)는 왜 필요한 것인가요
의(疑)는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사를 이루려 할 때 알아내는 원동력입니다. 올바르게 길을 가려면 가는 길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됩니다. 수행과 수양을 하는 데도 연구를 해야 되며, 마음의 원리와 삶의 원리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맞는지 그것은 무슨 뜻인지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또 다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의(疑)입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 마음 공부와 모든 일에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성실과 정성은 그 뜻이 비슷합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동양적인 해석으로 본다면 성실이라고 하는 것은 일에 열중해서 열심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성실하다고 말합니다. 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성실함으로 계속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정성 ‘성(誠)’에 의해서 유지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명들 또한 숨을 지속해서 들이쉬고 내쉬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끊어지면 죽습니다. 심장 박동은 살아있는 한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몸을 움직이는 오장육부가 다 그렇게 끊임없이 지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합니다. 정성이라는 것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12월 19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