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개벽 시대에 공부하는 소태산의 현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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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개벽 시대에 공부하는 소태산의 현대사상
  • 한울안신문
  • 승인 2026.03.10 15:47
  • 호수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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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마음공부를 축적해온
불법(佛法)을 주체로 삼고, 
제국주의 침탈을 포함해 인간을 노예화하는
물질개벽의 온갖 양상이 드러나는 ‘산 경전’을
올바로 보는 정신개벽을 요구한 소태산의 교법은 
동아시아와 서구를 통틀어 독보적인 인류를
선도해나갈 현대사상이다. 

내가 원불교를 처음 접한 것은 유튜브 백낙청TV에서 공산 백낙청 선생님의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좌담을 통해 소태산의 사상을 배우면서였다. 사상을 공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입교까지 하게 된 것은 원불교의 숨은 도인(道人) 연타원 박혜철 원로 교무님과 인연이 닿았기 때문인데, 교무님이 내민 손을 “꼭 잡아야 한다”는 마음의 명령에 따랐기에 달리 무어라 표현할 길을 모르겠다. 입교와 함께 교무님은 새로운 문을 열어주셨으니, 바로 종로교당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종로교당은 개성교당 출신의 혜타원 윤치덕 대호법과 원불교 여성회를 창립한 지타원 한지성 종사의 법력이 서려 있는 곳이라 첫 법회 때부터 마음이 크게 감응했다.

입교 1년 즈음부터 일상수행의 하나로 교전 필사를 시작했다. 『대종경』을 직접 써보니 한 구절 한 구절이 크게 와 닿았고, 특히 원불교 선진들이 번역한 한글 『불조요경』에서는 수천 년 불교 마음공부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인 교리공부에 대한 갈증이 생길 무렵 종로교당 간타원 김명정 교감님의 주선으로 교당 선배님들과 함께 3개월간 길산 방길튼 교무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의는 <정전> 총서편 1장 개교의 동기, 2장 교법의 총설, 그리고 교리도 설명에 집중되었는데, 교무님이 강조하신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1. 소태산을 대각으로 이끈 ‘의심’(疑心)의 내용을 소태산이 섰던 ‘그 자리’에서 봐야 한다. 2. 소태산 사상을 이해하려면 소태산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3. 소태산의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은 한반도 개벽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길산 교무님은 소태산이 구도 과정에서 가진 ‘의심’이 “조선에 물질문명이 들어오던 전환의 시대”에 가진 의심이며, 사은·사요·삼학·팔조의 교법 또한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제정되었다고 강조하셨다. 당시 영광은 가난한 촌구석이 아닌 법성포 항구와 와탄천을 통해 들어온 물자가 장성의 철도를 통해 내륙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요충지였고, 새로운 자본주의적 경제 흐름이 들어와 돈 버는 방식이 바뀌던 시기였는데, 개교표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이러한 물질문명 시대를 꿰뚫어 본 소태산의 ‘정신개벽의 대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소태산의 모든 행적을 그대로 밟아 연구해온 길산 교무님은 소태산이 장사한 곳(영광·법성·무장(고창) 등)과 구도한 곳이 실제로 겹쳐 있다는 사실과 함께 소태산의 언어와 현재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를 잘 파악하여 오독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다. 교무님께 받은 자료 중 “물질이 개벽되는 것도 물질 자체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정신이 들어서 연구한 결과”(송도성, 1936)이며, “과학이 물질 발명에 대한 지식을 진보시키는 학문이라면 도학은 정의도덕을 연마하는... 역대 성현이 때를 따라 밝혀 놓으신 학문”(전음광, 1933)이라는 초기교단의 회설(會說)을 보고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세계가 열리게 해야겠다”는 소태산 말씀이 곧 개교표어를 풀이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큰 성취였다. 따라서 소태산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불교·도가·개벽사상까지 동아시아인의 DNA에 들어있는 도학의 계보를 직접 밟아보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소태산 대각 이후 110년간 물질문명은 더욱 급속도로 발전해, 최근에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급격하게 변화시킨 현 지질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로 명명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자본주의가 미친 영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자본세’(Capitalocene 資本世)라고 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질시대 이름을 정하는 문제보다 현재를 소태산이 말한 ‘물질개벽 시대’로 규정하고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물질이 개벽한 시대에 가장 잃기 쉬운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고, ‘원망하는 마음’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의 혜택 속에 살면서도 오히려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 밖으로는 생태·환경을 궤멸적으로 파괴하고 안으로는 실존적 불안에 싸여 맹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소태산은 “물질의 노예 생활”(개교의 동기)이라고 했는데, 근현대의 어느 사상가들보다도 인류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내다본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나아가 소태산은 이러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는 정신개벽을 위해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삼학’(三學) 수행을 제시했다. 그런데 사리연구의 ‘사리’(事理)가 교리공부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나타난 ‘산 경전’ 읽는 것을 포함하는 것은 불교보다는 한반도 개벽사상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에 개화기가 시작되기 전인 1860년 수운 최제우가 유불선을 종합한 동학(東學)을 창도하면서, 인간이 하느님을 모신 ‘시천주’(侍天主)의 존재라는 마음공부와 함께 서양이 중국을 침략한 아편전쟁을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시국으로 판단하고,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다시개벽’의 길을 제시했다.

동학혁명이 실패하고 일본군에 의한 30만명 학살을 지켜본 증산 강일순은 상극으로 가득 찬 선천시대의 원한을 해소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로 천지의 도수를 바꿔 후천개벽 시대를 열고자 했다. 1919년 한반도 전역과 해외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혁명에도 개벽종교들의 영향이 지대했고, 1926년 천도교인 수가 200만명(<동아일보> ‘조선 종교현황’)에 이를 정도로 민중은 개벽사상에 뜨겁게 호응하고 있었다.

소태산의 대각은 바로 이러한 시대, 국권을 빼앗긴 이 땅에서 이루어졌다. 수천 년 마음공부를 축적해온 불법(佛法)을 주체로 삼고, 제국주의 침탈을 포함해 인간을 노예화하는 물질개벽의 온갖 양상이 드러나는 ‘산 경전’을 올바로 보는 정신개벽을 요구한 소태산의 교법은 동아시아와 서구를 통틀어 독보적인 인류를 선도해나갈 현대사상이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전환기에 개벽사상가들이 나타났다면 지금도 그에 못지않은 전환의 시대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삶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AI 혁명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동과 함께 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온 기존의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또 한 번의 대전환기인데, 120년 전의 전환기에는 집권층의 무능으로 나라를 잃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외세에 의해 갈라진 분단국이자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뒤 분단이 체제화된 나라이면서도 개벽사상을 체받아 수준 낮은 통치자가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는, 지극히 높은 민도(民度)를 가진 이 나라의 국민은 그 누구보다 ‘산 경전’을 올바로 읽고 있다. 이런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더 많은 사람이 소태산 사상, 정신개벽의 공부길에 나서서 이 땅에 광대무량한 낙원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보현 교도 종로교당
유튜브 보현TV 운영자

3월 1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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