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가 방문한 숭인동 가축시장과 도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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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방문한 숭인동 가축시장과 도축장
  • 한울안신문
  • 승인 2026.03.17 16:21
  • 호수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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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의 방문지 옛 여인시장 터-

소태산 대종사는 숭인동 가축시장의 도축장을 방문한 일이 있다. 이곳 일대는 단종비 정순왕후와 관련이 있는 여인시장 터이다.

황정신행의 구술이다.
「한 회원이 종사님을 모시고 잘 아는 소 도살장으로 구경 갔다.
“방금 잡은 것입니다. 몸에 참 좋습니다.”
주인이 김이 무럭무럭 하는 소피를 대접으로 내왔다.
“나가더라고”
종사님이 앞장서 나가며
“에이, 징상스러운 놈”이라 되풀이 하며 이 말을 하였다.
“……”
종사님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박용덕, 『금강산의 주인되라』)

소태산의 도축장(도살장, 도수장) 방문 이야기는 경성지부 돈암리회관에서 원기21년(1936) 입문한 팔타원 황정신행의 구술이다. 그러기에 도축장 방문은 경성출장소 창신동회관에서 1933년 낙산 앵두나무골에 신축 이전한 경성지부 돈암리회관 시기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돈암리회관의 회원이 소태산을 모시고 도축장에 간 것이다. 
일제강점기 경성부는 신설동과 아현동의 두 도축장을 폐쇄하는 동시에 부내 각 곳의 사설 도축장을 폐쇄하여 1917년에 서대문구 남쪽에 있는 현저동 도축장(현저동 103번지)을 개장한다. 이후 개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25년 숭인동 가축시장(숭인동 242번지)으로 개축 이전한다.(「마장동, 세계 최대 축산물 단일시장」, 2013년)
소태산 대종사가 도축장을 방문한 때는 황정신행이 입문한 1936년 이후이며, 숭인동 가축시장의 도축장을 방문한 것으로 여겨진다.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복자천의 하류 일대에 있었던 숭인동 도축장은 복자천 상류의 창신동회관(창신동 605번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에 경성출장소 회원들에게 생소하지 않았고 이용도 했을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경성지부 회원의 안내로 구경했던 도축장은 숭인동 가축시장 안에 있었다. 복자천 하류 지역인 숭인동 242번지에 경성부 가축시장과 그 경내에 도축장이 있었다. 지목은 전田으로 4,416평이요 소유주는 경성부이다. 도로 건너에 동묘(東廟, 숭인동 238번지)가 자리 잡고 있다.

숭인동 가축시장 및 도축장 위치도(『대경성정도大京城精圖』, 1936년)

 

도수장(『대경성부대관』, 1936년)

경성지부 돈암리회관(현 삼선공원)에서 숭인동 가축시장(숭인동 242번지)까지는 도보로 낙산을 넘어 복자천을 따라 40여분 걸린다. 복자천 상류의 창신동회관에서 복자천 하류의 숭인동 가축시장까지는 도보로 25분 이내 거리이다.

숭인동 가축시장 인근의 복자천 중하류에 동지(東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길지혜, 한성부 내 연지蓮池 연구), 복자천이 청계천에 합류하는 곳에 영도교(永渡橋)가 있다. 

동지(東池) 일대의 지형과 수계(1913년 지적원도)

 

영도교는 1457년(세조 3년) 음력 6월 군부인으로 강등된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가 세조 반정으로 폐위된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보낼 때 마지막 이별을 한 곳이라는 민담이 어려있는 곳이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한 곳이라 하여 영이별다리, 영이별교, 영영건넌다리 등으로 불리었고, 영미교(永尾橋)라는 별칭도 민초들은 영이별교의 변음으로 여기었다.

이 영도교 앞에는 옛 여인시장 터와 관우를 모신 동관왕묘(東關王廟, 동묘)가 있다. 여인시장은 동묘 인근 싸전골의 채소밭에 있었던 채소시장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유배되어 사사된 후 여승이 되어 동묘 위쪽 1km의 정업원(淨業院)에 거주하며 염색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때 동리 여인들이 동묘 옆에 일부러 나물장을 열어 철 따라 채소와 곡식을 제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京城同名點考 3, 동아일보 1936.3.21). 이곳은 부녀자 위주로 거래하였기에 여인시장이라 불리웠고, 이 일대에 1925년 가축시장이 세워진다. 

정순왕후 관련지 안내도(정업원, 동망봉, 여인시장, 영도교, 동묘)


정순왕후 송씨는 거처인 정업원 가까이 있는 봉우리에 매일 올라 단종이 유배된 후 참살당한 동쪽의 영월을 바라보며 남편 단종의 안녕 및 명복을 평생 기원한다. 후일 영조는 이곳에 ‘동망봉(東望峰)’이라는 친필을 내려 바위에 새기도록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채석장으로 변해 사라지며, 2017년에 동망정(東望亭)을 인근에 세운다. 

동망봉 암각 위치(출처: 조우철 『서울의 좌청룡 낙산팔경』)
절개되기 전 동묘에서 바라본 동망봉(1901년 브라즈 촬영)

소태산은 단종과 정순왕후의 슬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여인시장과 영도교 및 동망봉 그리고 동묘의 현장을 방문하던 길에 옛 여인시장 터 일대의 가축시장과 도축장을 들린 듯하다.

소태산은 살생과 육식에 관한 계문을 제시한다. 즉 “연고 없이 살생을 말라”(『정전』 보통급 10계문), “연고 없이 사육(四肉)을 먹지 말라”(『정전』 법마상전급 10계문)라는 계문이다. 
소태산은 살생과 사육을 먹는 육식에 관해 연고(緣故) 사항을 첨부한다. 그 예로 “교화하러 나가서 회원들이 정성스럽게 맛있는 고기반찬 올려놓으면 안 먹어서 되겠느냐”라고 하였고, 과원을 맡아 관리하는 임원이 소독과 제충으로 살생을 하게 되는 상황에 “과보는 조금도 두려워 말고 사심 없이 공사에만 전력하라. 그러하면 과보가 네게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만일 이 일을 하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사리(私利)를 취함이 있다면 그 과보를 또한 면하지 못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대종경』 교단품 13장)라고 당부한다. 
연고 없이 살생을 말라는 계문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기를 서원하는 것이다. 또한 불법연구회의 ‘계문 준행과 범계 해설’(〈회보〉 제48호)에 따르면 사족(四足) 가진 동물의 고기인 사육(四肉)은 병(病)시 약물로 사용할 경우와 병후나 쇠약한 원기(元氣)를 회복할 경우, 감염이나 빈혈 등의 병예방과 외처(外處) 여행 시 식사 반찬으로 부득이한 경우에는 허용한다.

원불교서울성적지연구회 방길튼·박혜현·윤지승

3월 2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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