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경부고속도로 1번 도로를 달린다. 6시인데도 1번 도로는 막힌다. 2007년도 스탠퍼드 대학 방문연구를 할 때이다. 교수들의 질문이 왜 한국의 반도체 발전이 그렇게 빠른가 였다. 한 중국인 교수가 한국의 1번과 실리콘밸리의 101번 도로를 비교하라고 했다. 101번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막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101번도 아침 7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그 학자가 보내온 기억이 있다.
지난 40년 미국에서 귀국 후, 1번 도로는 한국 반도체의 길이 됐다. 기흥에 삼성 반도체가 첫 반도체 팹을 지은 후, 1번 도로는 판교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화성, 평택까지 반도체 길로 변화하고 있다. 반도체 팹에 공급하기 위한 장비, 재료 회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반도체로 한국은 개벽을 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면서, 타 분야에서도 1등을 할 수 있다는 ‘정신개벽’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단골이었던 한국인의 단점, 즉 적당히 대충한다는 지적이 쑥 들어갔다. 반도체야말로 대충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타 분야에서 1등 정신이 심어졌다. 심지어 타 사업 부분을 잘하기 위해서 반도체 사업부 임원을 사장으로 앉히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한국 반도체는 질곡의 역사였다. 초기에는 절대 강자인 일본의 견제, 특허 소송, 그리고 악마와 같은 반도체 사이클이 괴롭혔다. 64KDRAM 제품으로 겨우 시장에 진입하면 일본은 256KDRAM을 시장에 내어 놓았다. 2~3년 후 다시 256KDRAM을 시장에 내어놓으면 가격은 반값으로 떨어져 있다. 팔아서 이익이 남아야 다음 1MDRAM 개발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악마의 싸이클에서 살아남았다. 단순한 게임의 법칙, 빠르게 개발해서 시장에 내어놓아야 생존한다는 법칙이다. 시장은 2~3년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제품을 요구한다. 2년에 1.5배 작은 트랜지스터를 개발한다는 무어의 법칙에 부응해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게임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이러한 고통이 20년 이상 이어졌다. 결국 메모리 두 개 회사, 그것도 절대 지존인 두 개 회사가 한국에 살아남았다. 그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반도체회사를 외국에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대다수의 국민은 반도체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반도체 분야는 정부의 연구개발 항목에서 10년 이상을 빠졌다. 회사가 하면 될 일을 정부가 도와 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러한 질곡 속에서도 한국 반도체는 살아남아 AI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또한 ‘정신개벽’을 선물로 가져왔다. 논리의 비약 같기도 하지만, 최근 각광을 받기 시작한 K 문화, K 음식 또한 반도체 낙수효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정신개벽의 전당인 원불교 교당에서도 필자에게 하는 질문 1위는 단연 반도체 주식투자에 관한 것이다.
이러할 때 차분히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반도체 개벽의 낙수 효과 중의 하나인 AI가 기승을 부리고 최근 전쟁에서 보듯이 인류는 길을 잃고 있다. AI 때문에 직장 수가 줄어들고, AI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고, 교육마저도 바뀌는 세상에서 K 반도체 경험이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필자는 원불교의 ‘정신개벽’에서 그 길을 찾는다. 100년 이상 꾸준히 축적해온 K 영성에서 말이다. 차분히 생각하면 100년 후의 지금 상황을 물질 개벽이라고 예언하고, ‘정신개벽’으로 인류가 지속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물질 개벽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길 말이다.
원불교의 ‘정신개벽’은 기존 종교와 같은 두꺼운 옷을 입지 않는다. 어떤 종교, 이념과도 상충하지 않는다. 아니, 모든 진리의 조각들을 두루 포함하면서 오히려 더 완전하게 해 준다. 불교의 대승 정신에 연원을 두기도 하고, 예수의 하느님 나라를 그대로 이 지구상에서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K 유행과 더불어 최근 조명 받는 증산교, 동학정신이 원불교를 통해서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난다. 원불교의 대표적인 교리인 ‘일원상의 진리’와 ‘일원상 서원문’를 통해서 말이다. 인류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도 일원상 서원문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한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10년 전, 필자는 B 회사 그룹 관계자에게 그동안 삼성이 주도해서 경부고속 반도체 도로를 만들었다면, 이제 B 회사가 영동고속도로를 H 자의 가운데 축으로 해서 이천과 청주를 잇는 중부고속도로에 제2의 반도체 축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아이디어를 담은 B 회사 광고가 중요 일간지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AI시대 전환이라는 이미지로 말이다. 필자는 이 광고의 AI대신 SPIN(영성 지능), 즉 AI시대의 정신개벽이 원불교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는 이미지를 AiWon(AI+Wonbuddhism)이 그리게 했다.
원불교의 일원상 서원문에서 가르쳐 주는 ‘삼학, 세 가지 공부법’이야 말로 물질 개벽으로부터 정신개벽으로 대전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정을 통해서 만나는 일원을 바탕으로, 사리 연구로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삼학의 줄기차고 굳건한 실행이야 말로 물질개벽의 노예로부터 주인이 되는 길이다.
5월 29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