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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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에 대하여
  • 한울안신문
  • 승인 2026.07.07 14:57
  • 호수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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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은 삶이라는 드라마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이원선 교도
안암교당, 금빛한의원장

어느 날 막 퇴근하려는데 손목을 자해한 환자가 맨발로 진료실에 들어와 죽고 싶다고 울부짖다가 잠이 들었다. 응급조치를 한 후 환자가 깨어나길 기다리는데 건물 밖은 제복 입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환자 가족과 환자가 타고 온 택시 기사분의 신고로 환자를 찾느라 20여 명의 경찰관과 소방관이 출동한 것이다. 이후 환자의 안전을 확인해 주고 보호자에게 다음날 반드시 함께 내원할 것을 당부했다. 
다음날 느지막이 보호자와 함께 내원한 환자에게 아주 불쌍하고도 나쁜 인간이라고 말해주었다. 항상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던 환자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불쌍한 건 맞지만 왜 나쁜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일종의 악랄한 먹튀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력이 있었던가. 낳고 기른 부모와 쉼 없이 적당한 공기와 신선한 물과 온도를 제공한 자연이 있다. 온 세상과 온 우주가 정성을 다해 함께 키우는 것인데 그들의 노고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은 영적 진화의 한계가 있기에 저마다 최선을 다해 성장해 인간의 먹거리가 됨으로써 인간의 피와 살이 되어 영적 진화의 완성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껏 맛있게 먹어온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빚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우리의 삶이란 모두가 참여해 찍고 있는 우주적 드라마와 같아 각자만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고통스럽다고 갑자기 일시정지 버튼을 누름으로써 드라마는 처음의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모든 출연자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또한 영은 영원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흐름은 종료되지 않고 단지 일시정지 상태에 놓여진다. 극단적 선택은 삶이라는 드라마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일시정지 상태는 특별한 법력이 아니면 2400년 동안 이어지니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 참으로 가엾고도 어리석은 일이다.
어떻게 2400년 동안 극단적 선택을 하는 당시의 감정과 상태로 일시정지가 이어지는지는 다음 회에 설명한다. 극단적 선택이 무엇보다 무지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범죄임을 우리 모두 인지하고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승에서의 사라짐은 저승에서의 살아남이기에.

7월 1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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