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고자 하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
금천교당
언제까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나름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서는 늦둥이 막내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 어쩌다 조금 별스런 말이라도 하면 참 많이 기특해 하셨다. ‘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찰떡같은 비유와 적절한 표현으로 듣는 이들이 ‘맞아!’라고 공감하고, 힘들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설법과 강의가 넘쳐난다.
공부 실력과 준비에 투자한 시간을 인정한다 해도 타고난 재능도 분명 있는 듯하다. 그 내용이 우리의 경전, 법문과도 통하니 ‘나도 대종사님과 스승님들의 본의를 저렇게 잘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재능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육근 중 어느 한 부분만으로 교법을 전하는 것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눈빛으로 응원과 위로를 줄 수도 있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이의 말에 마음과 귀를 열고, 들어 줄 수도 있다. 따뜻한 기운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스스로 바른 길을 찾게 할 수도 있다. 교법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에게는 실천으로 교법에 대한 신뢰를 심어 줄 수도 있다.
성직의 길을 가고자 하는 지원자는 감소하고, 사회는 고령화되어 가는 시대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교화를 어떻게 살려낼까?’ 숙제가 주어졌다. 교화의 미래를 밝힐 해법은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 ‘스승님들의 말씀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교화력은 나의 육근 중 어디에 담겨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교화력을 발휘할 때 교화도 살아날 것이라 생각하기에 스스로에게 해보는 질문이다.
7월 17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