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의 경교장과 남산 정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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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의 경교장과 남산 정각사
  • 한울안신문
  • 승인 2026.07.21 14:52
  • 호수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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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연구회 종법사 정산 송규, 
경교장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 주석을 환영 지지하다

정산 송규가 방문한 경교장
불법연구회(원불교 전신) 종법사 정산 송규는 1945년 12월 3일 오후 4시에 유허일을 대동하고 백범 김구의 거처인 서대문 밖 경교장(京橋莊, 옛 죽첨장)을 방문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그 수반인 백범 김구의 귀국을 환영한다. 정산 송규는 환영사를 낭독하고 임시정부 절대 지지를 표명한다.(동아일보, 조선일보, 신조선신문, 자유신문 1945.12.5. 기사)

“작삼일昨三日 하오下午 4시경에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3·1동지회란 명칭으로 조직된 단체의 이종태 외 32인과 불법연구회 대표는 김구 주석을 방문하고 절대 임시정부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동아일보, 1945.12.5. 석간)

울연집중하는 민의, 각단이 내방, 신봉 표명(동아일보 1945.12.5. 석간)

“3일과 4일 오전 중 죽첨정竹添町 숙사宿舍로 김구 주석 이하 요인들을 왕방往訪한 단체는 다음과 같다. △三一동지회 △불법연구회 … (김주석 방문단체. 자유신문 1945.12.05.)
“경성 돈암정의 불법연구회에서는 3일 오후 대표 송규, 유허일 양씨가 김구 씨를 방문하고 환영사를 낭독”(임정숙사인사래왕臨政宿舍人事來往. 조선일보 1945.12.05.)
“ … 再昨3일부터 서대문 밖 임시처소에서 환국 최초의 국무회의가 개최되었으며 … 그리고 작일에는 삼일동지회 대표 33인과 불법연구회 송규 씨와 一人이 김구 주석을 방문하여 환영사와 임시정부 절대 지지를 표명하였다하며, 4일에는 … ”(작일은 회의도 휴회. 신조선신문 1945.12.05.)

작일은 회의도 휴회(신조선신문 1945.12.05.)

그리고 1949년 6월 26일에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하자 정산 송규는 크게 슬퍼하며 백범의 백절불굴의 의와 주도면밀한 신과 근검실행의 역을 추모한다.

1949년(원기34년 을축) 6월 26일, 백범 김구가 한 청년(안두희)에게 피습 급서하였다는 보도를 들으시고, 정산 종사 통분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한참 동안 묵연하시다가 대중을 향하여 말씀하시었다.
“선생의 서거는 우리 민족의 크나큰 손실일 뿐 아니라 80평생을 오로지 조국 광복과 민족 자유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신 순일한 애국자를 소위 우리 만족으로서 해를 가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언어도단이며 외국 사람들에게도 다할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한다. … 나는 종교가이므로 그 선생을 정치적 관련으로써 친근한 것은 아니나, 오직 그 선생의 장하신 마음을 존경하고 숭배하므로 가위 심월상조의 정의가 건너게 되었는바 그 장하신 마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나는 백절불굴의 의요, 하나는 주도면밀한 신이요, 하나는 근검실행의 역이라. … 우리는 선생의 이 장하신 마음을 추모하는 동시에 우리 회상 운전에도 또한 그와 같은 마음으로 개개이 추진한다면 이 회상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니, … 이것이 곧 백범 선생을 추모하는 길이 되며 백범 선생의 애족지정에 보답하는 길이 될까 하노라.(《원광》 1호. 김구 서거)

불법연구회 종법사 정산 송규가 경교장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 주석을 환영 및 지지할 때 대동한 유허일은 ‘근만백범옹謹輓白凡翁’의 추모시를 발표한다.
”한족천년유차웅韓族千年有此翁 천하금일탈영웅天何今日奪英雄 
 도성마곡관심불道成麻谷觀心佛 병기수양총각동兵起首陽總角童
 수몽재탄모상설囚夢再呑모上雪 적혼기곡검두풍賊魂幾哭劍頭風 
 북수미척신선상北愁未滌身先喪 만루방방소태공萬淚滂滂訴太空“(〈원광〉 1호)

2. 경교장과 백범 김구
경교장京橋莊은 옛 죽첨장竹添莊(경성부 죽첨정 1정목 1번지)이다. 광복 후 임정 청사와 김구 주석의 숙소로 사용되면서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를 따서 경교장으로 개칭하였다.

1930년대 죽첨장. 경성부 죽첨정 1정목 1번지(적색선)
출처: 지번구획입대경성정도 제5호(1936년), 서울역사박물관

경교장은 일제강점기 광산 경영자 최창학(1800~1959)이 1938년에 세운 저택 죽첨장이다.(철근콘크리트조 지하실 딸린 2층 건물, 연평수 264.40평)
최창학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를 일본군에 헌납하고 국민정신총원 조선연맹의 기금으로 10만원을 기부하는 등 친일행위를 하였다.(동아일보 1937.07.18.) 광복을 계기로 변신하여 임시정부환국봉안회를 통해 1945년 11월 23일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 주석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그러나 1949년 6월 26일 김구 주석이 서거하자 경교장의 반환을 요구한다.(동아일보 1949.08.25.), 이에 유족은 경교장을 떠난다.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右)와 조완구(左)
출처: 『경교장』, 서울도서관

경교장은 194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 후 1945년 11월에서 1946년 2월까지 사실상 청사로 사용한 곳으로, 국무회의 개최 및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주무대가 되었다. 
또한 백범 김구가 약 4년간(1945.11.23.~1949.06.26.) 남북정치 지도자 회담 등 통일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을 하다 서거한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1960년 월남대사관으로 사용된 경교장. 조선일보 1960.06.24. 

불법연구회 종법사인 정산 송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수반인 백범 김구를 환영하고 지지했던 곳은 경교장 1층 응접실(적색원)로 여겨진다.
1층 응접실은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의 대표적인 회의들이 개최되고, 백범 김구 주석(主席,임시정부 수반)이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접견했던 곳이다.

경교장 평면도. 1층(右) 2층(左)

불법연구회 정각사와 백범 김구
원기32년(1947) 불법연구회 서울출장소 제1회 하선 시 김구 주석과 정산 송규(당시 불법연구회 종법사)가 서울지부 교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불법연구회 서울출장소 제1회 하선 시 김구 주석과 정산 종법사
(앉은 좌측부터 이운권, 김대거, 한 사람 건너 정산 종법사, 김구, 이공주, 황정신행)

1945년 12월 3일에 정산 송규는 백범 김구의 귀국을 환영하고 지지하기 위해 경교장을 방문한다. 이후 정산의 상경에 따라 백범은 1947년(원기32년) 불법연구회 서울출장소 제1회 하선 시 답례(?) 차 방문한 듯하다. 정산 송규는 8월 29일 상경하여 9월 9일 해제식을 마친다.
“본회 회세 발전을 위하여 서울 총부출장소인 한남동 정각사에서는 하기 특별강습회를 개최하고 강사 이공주씨 상경하여 8월 20일에 결제하였고, 이어서 28일에는 법사님(정산 송규)과 이운권씨 상경하여 소정의 일자를 무사히 마치고 9월 9일에 해제식을 거행하다.”(시창32년도 사업보고서, 『교고총간』 5권)
정산 송규와 백범 김구가 하선 시 대중들과 기념 촬영한 곳은 남산 정각사로, 소태산 대종사 초상화가 걸려 있다.

백범 김구는 경교장에서 남산 한남동의 불법연구회 정각사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다.(『구도역정기』 
“어느 날은 예고도 없이 백범 선생이 오셨다. 생신을 맞이하여 주위의 술렁거리는 눈치를 보고 이곳 한남동(불법연구회 정각사)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해 시절 주위 동지들이 어머님 생산을 맞아 돈을 드리면 어머님은 그것을 모아 독립 자금에 보태라고 내놓으셨다고 말씀하시며 내가 어찌 생일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 그리고 우리에게 밭에 있는 콩잎을 쪄 된장과 함께 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만일 시장에서 반찬을 사러 가는 일이 있으면 나는 이대로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셔 있는 그대로 대접했다. 어느 때는 맹장염으로 수술한지 일주일이 된 며느리를 데리고 오셔서 「이 사람 누울 자리 좀 마련해 주시오.」하시고는 한동안 요양하게 하셨다. … 한때 백범 선생은 양딸이라면서 젊은 여자 한 분을 데리고 오셨다. … 그 여자는 남편이 전쟁통에 전사하자 자살하려다가 … 백범 선생을 찾았다. 이 딱한 처지를 들으시고 … 한남동에 데리고 왔다고 하시며 부탁하셨다.”(『구도역정기』 대산 김대거 종사편)

당시 남산 정각사에 ‘불법연구회 서울출장소’를 두었고 대산 김대거가 소장으로 있으면서 백범 김구를 따뜻하게 응대한다. 백범은 생일을 맞아 시선을 피해서, 맹장염 수술한 며느리나 양딸의 요양을 부탁하기도 한다.

정각사 내부 모습. 관세음보살상(중앙), 소태산 대종사 진영(右), 연화 일원상기(左)

원불교서울성적지연구회  방길튼·박혜현·윤지승

7월 2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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