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이루지 못하더라도
다음 생에도 다시 이 회상에 인연돼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
세세생생 참 수행인으로
살아가기를 서원한다.
서울교당
아흔일곱이 되신 사촌 셋째 언니는 내가 어렸을 적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많이 배우셨고, 고위직 공무원을 지낸 뒤 사업에도 성공해 넉넉한 삶을 사셨다. 시골에 오실 때마다 과자와 설탕 같은 귀한 먹거리를 사 오셨기에 우리는 달콤한 선물을 기다리며 언니를 반갑게 맞이하곤 했다.
지난해 추석, 인사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 걱정이 되어 처음으로 언니 댁을 찾아갔다. 집 안에는 책과 신문, 약 등이 다소 어수선하게 놓여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있었다. 정신은 여전히 총명하셨고 치매도 없으셨다. 귀가 어두워 전화벨을 듣지 못하셨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문득 내 생활을 돌아보았다. 이번 기회에 버릴 것은 버리자고 마음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 젊은 시절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삼사십 대의 풋풋한 감성, 기쁨과 고민, 반성과 보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금의 일기와 비교해 보니 내용이 사뭇 달랐다. 지금의 일기는 생활 기록에 가까웠다.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누가 다녀갔는지 등을 적어 놓는 메모장이 되어 있었다. 일상 속에서 얻은 심리작용 처리건과 감각감상도 있다.
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있었다. TV에서 ‘독거노인의 사망 시점을 알 수 없어 안타까웠다’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도 독거노인이구나. 그렇다면 최소한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있도록 하자’ 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법을 알고 수행하는 사람인데, 왜 독거노인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때부터 마음이 바뀌었다. 죽음을 걱정하기보다 생사 해탈과 생사 자유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을 통해 생사윤회를 확실히 믿고 있었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는 어느 정도 생사 해탈의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사 자유는 어떻게 얻는 것일까. 막연히 법문을 듣고 좌선만 하면 되는것인지 늘 의문이었다.참회문 가운데 “공부인이 성심으로 참회 수도 하여 적적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고 보면 천업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라는 대목을 읽으며 ‘아, 이렇게 공부하면 되는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이후 좌선과 독경에 더욱 공을 들였다.
그러던 중 올해 안타원 교감 교무님의 무시선법에 관한 말씀을 접하게 되었다. 기독교 신앙을 내려놓고 원불교에 귀의해 일주일 만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시선법이었다는 이야기에 나도 무시선법을 읽기 시작했다. 무시선법에서 “사람이 만일 오래오래 선을 계속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즉… 생사 자유와 윤회 해탈과 정토 극락이 다 이 문으로부터 나오나니라.”라는 법문을 만났을 때 마음이 환해졌다. ‘오래오래 선을 계속하면 되는 것이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그 후로는 아침저녁 교당의 선과 기도에 동참하고, 때로는 염불과 독경을 이어가며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어떤 날은 건성으로, 어떤 날은 정성을 다해, 가끔은 진경을 체험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걸음씩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시골 고향집은 참 좋다. 새벽이나 저녁에 목탁을 크게 쳐도 누구 하나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 어머니 생각도 난다. 예전에는 새벽마다 심고와 좌선을 마친 뒤 목탁을 치며 독경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피곤하실 텐데 좀 더 주무시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어머니처럼 목탁을 치고 있다. 어머니는 손님이 와도, 새 사위가 와서 잠을 자더라도 기도와 독경을 거르지 않으셨다.
이생에서 생사 자유를 완전히 이루지 못하더라도 다음 생에도 다시 이 회상에 인연돼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 세세생생 참 수행인으로 살아가기를 서원한다. 아흔일곱 언니와 나의 가장 큰 차이는 재산도, 삶의 방식도 아니다. 원불교 신앙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언니는 죽음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언니를 찾아뵌 일이 결국은 내 삶을 돌아보고, 수행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한 소중한 공부가 되었다.
7월 31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