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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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 
  • 한울안신문
  • 승인 2026.08.11 15:22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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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함께 살아갈 자리를
만드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황자은 교무
정토회관 분원교당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대학 동창이었다. 오래전부터 연락하고 싶었는데 근무하는 병원에서 우연히 교무님과 연결돼 내 번호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묻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방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하다 결혼하고 지금은 병원에서 일한 지 7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자녀는 일곱 명. 큰아이가 스물네 살이고 막내는 아직 35개월이라고 했다.
가족의 이야기가 방송에 소개된 적도 있다며 영상을 보내주었다. 영상 속 가족의 모습에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느껴졌다. 부부와 자녀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한 사람의 인격으로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특별한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아도 자연을 경험하고 삶의 여러 일을 직접 겪으며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모습은 밝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니 우리가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잘 사는 삶’이라고 믿어온 기준도 돌아보게 된다.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 아이에게 더 많은 교육과 기회를 주는 것.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원불교에서는 우리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은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가르친다. 하늘과 땅, 부모, 동포와 법률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보은의 삶이란 받은 은혜를 무엇인가로 갚는 것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이 다른 존재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함께 살아갈 자리를 만드는 것 또한 보은의 삶일 것이다. 
성직자인 나 자신도 돌아본다. 사람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익숙한 틀과 형식에 매여 있지는 않은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보다 내가 정해놓은 기준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뜻밖의 한 통의 전화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기 몫을 다하는 것.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자리를 만드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8월 1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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