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의 식(識) -영험하지 않은 바가 없나니라.
대종사 선원 경강(經講) 시간에 출석하사 천지의 밝음이라는 문제로 여러 제자들이 변론함을 들으시다가,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천지에 식識이 있다고 하는가 없다고 하는가.]
이 공주 사뢰기를 [천지에 분명한 식이 있다고 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무엇으로 식이 있는 것을 아는가.] 공주 사뢰기를 [사람이 선을 지으면 우연한 가운데 복이 돌아오고 악을 지으면 우연한 가운데 죄가 돌아와서, 그 감응이 조금도 틀리지 않사오니 만일 식이 없다 하오면 어찌 그와 같이 죄복을 구분함이 있사오리까.]
제자 이 공주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의 이치로 설명합니다. 불교의 기본 교리이자 소태산 스승님의 깨달음의 핵심 내용인 인과의 이치를 식의 근거로 삼은 대답은 실력 갖춘 애제자다운 응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증거를 제시하면 좋겠다는 대종사님의 요구에는 제대로 부응하지 못합니다.
대종사님은 현묘한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쉬운 보기를 듭니다. 이를 통해서 ‘현묘한 지경’, ‘증거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깨달아보라고 권유하십니다.
대종사님은 ‘땅’을 예로 들어 ‘천지’를 이야기하시고 ‘땅’의 기능을 통해 ‘천지의 식’을 설명하고자 하십니다. 생명 없는 무정물(無情物)인 땅의 또 다른 생명성(生命性)을 증거로 삼으십니다.
생명을 가진 ‘종자’와 무정물인 ‘땅’이 만나서 인과의 이치를 ‘밝게’ 증거하는 사례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물리적’ 세계에서 소소영령하게 작동하는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이런 설명에 대해 예상되는 반론에도 미리 응답을 하십니다. ‘땅에 의지한 일체 만물’ 모두에게 ‘땅의 감응’이 필수임을 전제하십니다. 대종사님에게 땅은 하늘과 둘이 아니고 우주만유와 한 기운 한 이치로 하나로 엮어진 ‘영험(靈驗)’한 존재인 것입니다.
대각 일성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서품」1장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 만유는 하나의 몸과 같은 유기적 존재이며, 이들은 인과의 이치에 따라 생멸 없이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정물과 같다고 무생물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틀로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천지는 인간의 감각만으로는 알기 힘든 ‘영험’한 존재입니다. 이 ‘영험함’을 깨달아야 ‘천지의 식’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험함은 오직 ‘땅’만의 것이 아니라 ‘우주 만유’ 모두의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천지의 식을 설명한 다음에 비로소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설명을 덧붙입니다. ‘인간’중심의 설명보다 ‘우주’적인 설명을 우선하셨습니다.
‘천지의 식’은 ‘사람의 희·로·애·락과는 같지 않은 식’임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동안 ‘천지의 식’을 ‘사람의 식’으로 인식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인간의 ‘상(相)’으로는 ‘천지의 식’을 제대로 ‘식(識)’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사람의 식’과는 다른 ‘식’인 것입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늘을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죠. ‘천지의 밝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수행인이라면 ‘무량 청정한 식을 얻어 천지의 위력을 능히 임의로 시행’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천지의 식을 체받’도록 정성을 들여야겠습니다.
「일원상 서원문」의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이라는 내용과 상통합니다. 생활 속에서 ‘어떠한 경계를 당할지라도’ 우리 ‘양심’에 살아서 빛나고 있는 ‘천지의 식’에 마음을 대조하면서 사는 공부인, 천지와 하나 되는 천지인(天地人)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마음공부〗
• 나는 ‘천지의 식’을 언제 어떻게 느끼나요?
• ‘천지의 식’을 느끼기 시작하면 내 삶은 어떻게 변화하나요?
• ‘무량 청정한 식을 얻어 천지의 위력을 능히 임의로 시행’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최정풍 교무 소태산마음학교, 원남교당
8월 14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