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 등이 일제히 답하기를 “사람의 생사라 하는 것은 누구나 물론하고 조만간 다 있는 것이로되, 시방 세계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은 천만인 중 가장 있기 어려운 바이며, 또는 저희 등이 본래 대종사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평생에 가난한 시골(궁촌, 窮村) 농민으로 그 사상이 항상 한 가정에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거늘, 이제 저희들의 마음속(심중, 心中)에 시방세계를 한 집안으로(일가, 一家) 보는 넓은 생각을 얻게 되었으니, 그 사상 발전에 어찌 큰 영광이 아니며, 또는 저희들이 희생한 공덕으로 만약 시방세계 중생이 영원한 행복을 받게 된다면 저희들에 있어서는 얼마나 큰 사업이 되겠습니까?
저희들이 비록 영혼 세계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금세(今世)에서 하고 온 일을 기억한다면 항상 장쾌(壯快)한 마음이 마지않으리라고 추측됩니다. 그리하여,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기쁘고 기운이 활발하여 자연 중 그 희색이 외면(外面)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대종사께서 그 말을 일일이 들으시고 탄식과 감탄(차탄, 嗟嘆)함을 마지 아니하셨다.
그러자, 오후 8시가 됨에 대종사께서 단원에게 명하시어, 청수(淸水) 한 그릇(일분, 一盆)을 교실 중앙에 진설(陳設)케 하시고, 각각 가지고 온 단도를 청수상위에 나열한 뒤, 일제히 ‘죽어도 여한이 없다’(사무여한, 死無餘恨)는 최후 증서를 써서 각각 백지장(白指章)을 찍어서 상(床)에 올리게 하시고, 이어서 죽기를 각오하는(결사, 決死) 의미로써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복지, 伏地) 심고를 하게 하시고, 식이 끝난 후에 대종사께서 그 지장(指章) 찍은 종이를 살펴보시니 그 지장 찍은 자리가 곧 혈인(血印)으로 변하였는지라. 대종사께서 그 혈인을 들어 여러 단원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그대들의 일심(一心)에서 나타난 증거라.” 하시고, 곧 그 증서를 소화(燒火, 불에 태우거나 사름)하여 고천(告天, 하늘에 고함)하시고 “바로 모든 행장(行裝)을 차리어 기도 장소로 가라.” 하시니 9인이 일제히 시계와 단도와 기타 기구를 휴대하고 각각 방위(方位)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대종사께서 한참 동안 그 가는 뒷모양을 보시고 계시더니, 돌연히 큰 소리로 불러 말씀하시되 “내가 그대들에게 한가지 말을 더 부탁할 바가 있으니 속히 교실로 돌아오라.”고 하셨다. 단원 등은 이상히 여기면서 다시 대종사에게 와 뵈니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感應)하였고, 음부공사(陰府公事)가 이제 판결(判決)이 났으니, 오늘(금일, 今日)에 그대들의 생명을 기어히 희생하지 않아도 우리의 성공은 오늘부터 비롯하였다.” 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 세계(十方世界)에 바친 몸이라. 장차 영원히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千辛萬苦)와 함지사지(陷之死地,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짐)를 당할지라도 오직 이때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고, 또는 가정(家庭) 애착(愛着)과 오욕(五慾)의 환경을 당할 때에는 오직 오늘에 죽은 셈만 잡는다면 다시는 거기에 끌리지 않을 것이니, 그 끌림이 없는 순수한 생각으로 공부(工夫)와 사업(事業)에 전무(專務)하여 길이 중생(衆生) 제도(濟度)에 노력하라.” 하시니, 9인 등은 대종사의 말씀을 듣고 여러 가지의 이해(理解)는 얻었으나, 처음에 흥분된 정신이 쉽게 진정되지 아니하였다.
11시가 지난 후에 대종사께서 다시 단원에게 명(命)하여 일제히 중앙봉에 올라 기도(祈禱)를 마치고 오게 한 뒤, 각 단원에게 법명(法名)과 법호(法號)를 하사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전날(전일, 前日) 이름은 곧 세속(世俗)의 이름이요 개인적 사명(私名)이었던 바, 그 이름을 가진 자는 이미 죽어 매장(埋葬)되었으므로 이제 세계 공명(公名)인 새 이름을 주는 바이니, 삼가 받들어 가져서 많은 중생을 제도하라.” 하시니 그 법명과 법호는 아래와 같다.
일산 이재철, 이산 이순순, 삼산 김기천, 사산 오창건, 오산 박세철, 육산 박동국, 칠산 유건, 팔산 김광선, 정산 송규
그 후에도 단원의 기도는 여전히 계속하여 모든 절차에 조금도 흐트러짐(해이, 解弛) 없이 진행되더니, 동년(仝年) 10월 6일에 이르러 대종사의 명령에 의하여 드디어 해재식(解齋式)을 거행하니 기도에 대한 행사는 이에 마쳤다. (9월호에 계속)
김선명 영광교구장
8월 21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