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연구회 경성지부 건물 배치와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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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연구회 경성지부 건물 배치와 경관
  • 한울안신문
  • 승인 2026.08.25 15:10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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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연구회(원불교 전신) 경성지부는 앵두나무골 위편의 낙산 기슭 송림 사이에 있었다.

불법연구회 경성지부 수양원 신축낙성기념(시창18년 음력 9월 16일)
신축 회관 배경으로 기념 촬영(27명)

앵두나무골 불법연구회 경성지부의 풍광이다.
“층계 아래 흐르는 물은 한 티끌 없이 맑기도 하려니와 주야를 놀지 않고 내려가는 그 정성 장차 강해江海에까지 미쳐 그 목적을 달하고 마나니, … 정원 속에 고이고이 자란 앵두나무는 어느 때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사람의 눈에 미관美觀을 도와주더니 이제는 진주 같은 열매를 맺어 여러 사람의 입에 양미凉味를 도와주도다. … 녹음이 우거진 밤나무는 송알송알 밤송이가 생겨있다.”(황대일화, ‘경성지부 참관기’, 〈회보〉 30호, 시창21년 11~12월호) 
1933년 음력 9월 16일 신축 낙성한 돈암리회관의 층계 아래에 맑은 계곡물이 흘렸으며, 주위에는 소나무가 울창했다. 특히 마당에 앵두나무뿐만 아니라 밤나무도 있었으며 앵두가 유난히 맛이 있어 유명했고 자두나무도 너댓 그루 있어 봄여름 한가한 때 경성지부는 군침 도는 호시절이었다.(『응산종사문집』 역사자료편)

또한 신축한 돈암리회관의 모습이다.
“낙산 아래의 삼선평 동부는 일약 변화하여 신세계가 전개되어 화양식 신제도의 대건물이 맑은 계곡 위의 소나무 숲 사이에 초연한 자태로 … 20여 간의 목조구조도 웅위하고 … 전후좌우의 유리창은 산빛과 나무 그림자를 반영하여 한 폭의 회화를 이루고, 홍합력 차양은 비바람 방지에 외미外美까지 띄었으며, 황색 면기는 금면목을 장식하여 … 12간 장방은 끝이 보이지 않아 3백명의 수용량 … 일간 현관 응접실은 특별 장식을 하여 … 이중 삼중의 석태石台는 계단이 정정井井하며 … 상면 일방에 일부 탑을 구성한 삼동구간三桐九間의 기존 초옥 … 철사 울타리는 도범 장지가 정엄하고 … 대문 외 수보의 거리를 둔 노상 암석에 수양원 입구라는 오대자를 준각 … 현 조송광 회장이 남긴 자취가 완연할 것이다.”(경성지부 신축 낙성에 제하여. 〈회보〉 제7호)
“반공半空에 솟아있는 종각 속에 두렷이 달려있는 법종은 아침으로 33천, 밤으로는 28천을 응하여 우렁차게 울리어 열요도시熱鬧都市 홍진紅塵 속에 향락에 취한 중생의 꿈을 깨워주라 한다.”(황대일화, ‘경성지부 참관기’)

앵두나무골의 경성지부는 대문을 들어서면 신축한 회관(법당채)이 있으며, 그 옆에 종각과 법종(16관)이 있고, 연이어 기존의 사무실채와 식당채 및 창고 등 3동 9칸 초옥이 있었다. 기존 초가 3동은 대지인 돈암리 509번지(14평)에 있었을 것이고, 신축 회관과 종각은 전田인 돈암리 510번지(571평)에 건축한다. 
경성지부 돈암리회관은 독립된 법당으로 지은 최초의 건물이기에 대각전이라 명명해도 타당하다. 신축 회관은 2~3층 석대 위에 양식과 일식을 절충한 화양식和洋式 12칸 목조 기와집으로 유리창이 둘러있고 함석 차양을 달았으며 황색 페인트칠을 했다. 300여 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기존 별채 건물을 합하여 총 20여 칸이다. 12칸의 법당은 미닫이 칸막이를 질러 3칸으로 나누었으며 한쪽은 조실(종법실)로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익산본관 외에 지방 최초의 조실 역할을 한 듯하다.(『응산종사문집』 역사자료편)

회관(왼쪽), 종각(가운데), 사무실 및 식당채(오른쪽)
경성지부 제10회 무인戊寅 동선 기념, 종각(노란원)

성곽이 보이는 산봉우리와 마주 보고 있는 현관 및 응접실을 거쳐 법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푸른빛 목판 일원상과 소태산 대종사의 진영을 모시었다.
〈조광〉 ‘교주를 생불 삼는 불법연구회의 정체’ 중에 “벽문을 열고 비밀실(법당)을 들여다보니 일원상이라고 하여 큰 목판에 푸른빛으로 원형을 그리고 거기다 절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교주의 사진이 있는데 교인은 반드시 이 사진 앞에 절을 한다고 한다.”(〈조광〉 1937년 6월호)라는 기사가 등장한다.
이는 서울 지역 최초의 일원상 봉안이다. 불법연구회는 초기에 ‘청색 일원상’을 전위적으로 모신 역사가 있다.(村山智順, 『조선의 유사종교』, 1935년 발행) 1935년 이전 익산총부 공회당에 청색실로 수를 놓은 일원상을 걸었다. 그렇다면 경성지부 회관의 ‘푸른색 일원상’은 1935년 4월 29일 발행한 『조선불교혁신론』의 「불성 일원상 조성법」이 확정하기 전 시범적으로 봉안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1937년에 〈조광〉 기자가 본 푸른색 일원상은 1933년 음력 9월 16일 돈암리회관 낙성 시 전위적으로 봉안했던지 또는 익산총부 대각전에 일원상을 공식적으로 봉안한 이후에도 기존의 푸른색 일원상을 모셨다 할 것이다.

앵두나무골 경성지부의 사무실채는 방 두 칸과 두 방 사이에 불을 땔 수 있는 부엌이 있었으며 사무실 겸 남자 숙소로 이용하였고, 식당채는 ㄴ자형으로 식당 겸 여자 숙소로 사용하였다.(『응산종사문집』 역사자료편)
사무실채의 방 하나는 이완철 교무가 사용했고 서대원과 박장식이 경성에 있을 때 함께 썼으며, 다른 방 한 칸은 박광전과 박광진 형제와 정자선 등이 학교 다닐 때 남학생 숙소로 사용하였다. 식당채 숙소는 이동진화 교무와 여자 전무출신들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한 채는 창고였다.(서문 성, 『원불교 경성교화』 1)
주변은 철사 울타리로 둘렀으며, 대문 앞 바위에는 불법연구회 2대 회장 조송광의 글씨로 ‘수양원입구’라는 오대자五大字)를 새겼으며, 대문 기둥에 ‘불법연구회경성지부’라는 간판과 ‘수양원’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그리고 회관의 석대 아래에 앵두나무 등이 있는 정원이 있었고 그 앞에 맑은 냇물이 흘렀다. 또한 경성지부 내에 앵두나무 밭이 있었으며, 대문을 나서면 1936년(원기21년) 10월경에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가설架設하였다.(〈회보〉 제31호, 경성지부 근황)

돈암리회관 대문과 간판, 〈조광〉 1937년 6월호
‘수양원’ 문패(빨간박스), ‘불법연구회경성지부’ 간판(파란박스) 

동소문에서 앵두나무골에 들어서면 양쪽 산언덕 사이의 계곡을 만나며, 이 물길을 거슬러 비탈길을 오르면 바위에 새긴 ‘수양원입구’라는 글자를 접하며 대문을 거쳐 석대 위 신축 회관에 이른다. 

앵두나무골 진입로와 갈림길(적색원)
출처: 국유산림매각원(위) 및 스마트서울맵(아래)

회관 주변으로 송림이 펼쳐진 산봉우리가 감싸고 앵두밭이 있었던 뒤꼍으로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지금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만 당시는 우람한 노송이 우거져 있었으며,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산등성이에 하얀 모래(磨沙土)가 뒤덮어 있었으며 옛 성城이 그대로 남아 있어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구도역정기』 숭산 박광전 법사편)
그 당시 경성지부 회관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회원들은 경성 시내에서 전차를 타고 들어와서 도보로 이동하는 노정으로 교통이 편한 곳은 아니었다.(〈회보〉 제1호, 이완철 ‘경성지부 신점기지新占基地 소개기’) 

앵두나무골 경성지부 위쪽에 광화문 앞에 있었던 삼군부의 총무당 건물이 1941년 8월경에 이축한다. 이 건물을 경기도 관공리官公吏 연성도장으로 개축하여 1942년 8월 준공 후 1943년 2월 22일 개소식을 연다.(경성일보 1943.02.23. ‘경기도수련도장 청晴의 개소식’) 1942년(원기27년) 겨울부터 2년간 경성지부 서기로 근무했던 이성신은 총무당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원불교서울성적지연구회 방길튼·박혜현·윤지승

8월 2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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