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성리품」1장
소태산 대종사님이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 마음을 표현한 시입니다. ‘맑은 바람 달 떠오를 때 만상이 자연히 밝아오도다.’라고 풀이합니다(『원불교대사전』). ‘청풍(淸風)’ 맑은 바람이, ‘월상시(月上時)’ 달 위에 불 때, ‘만상(萬像)’ 삼라만상이, ‘자연명(自然明)’ 자연히 밝아지다(드러나다) 정도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한편, 『대종경』「서품」1장에서는 대종사님의 대각 일성을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표현의 선후를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성리품」1장이 대종사님의 대각의 심경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서품」1장은 대종사님 대각의 내용을 교리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감성적 표현과 이성적 표현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시적 감흥을 깨트리거나 다양한 감상의 여지를 줄일 수도 있겠지만, 이 두 가지 법문을 연계해서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공부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 구름이 달을 가리면 달빛이 만상을 비추기 어렵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져서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죠. 그런데 맑은 바람이 불면 달을 가리던 구름은 사라지고 달은 자신의 밝은 빛으로 세상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삼라만상이 모두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글귀가 그저 풍경을 묘사한 시가 아니라 대각의 심경을 나타낸 시이니, 청풍이나 달을 달리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수행자 박 아무개(소태산)의 마음 달(성품, 본성)은 원래 밝디밝았으나, 무명의 구름에 가려 있어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청정한 수행으로 그 구름을 벗겨내니, 소태산 대종사님의 자성 광명이 온전히 빛을 발하고, 우주 만유의 실상도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다고 새겨볼 수 있습니다.
이 광명은 달빛과 같이 겉모습만 비추는 빛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실상까지 비추는 광명입니다. ‘만유가 한 체성’이라는 것,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것,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해 있다는 것, 이들이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다는 것을 밝혀준 대각의 빛인 것입니다.
대종사님의 마음이 대각으로 밝아졌고 대종사님이 보는 세상의 실상도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기쁨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성리품」1장이고 이 깨달음을 교리적으로 표현한 것이 「서품」1장인 것입니다.
이 법문의 달은 하늘에 있는 달만이 아니고, 대종사님 마음에만 있는 달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있는 달입니다. 그래서 ‘일원상 서원문’에선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설명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마음 달의 빛을 온전히 빛나게 하기 위해선 탐·진·치와 같은 마음의 구름을 거둬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성현님들의 본래 마음과 우리 본래 마음은 저 하늘의 보름달과 같이 똑같이 빛나는 것이고, 이 자성광명을 회복할 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실상 그대로를 자연히 드러나게 해서 정견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성품에 대한 이런 믿음과 깨달음이 바로 마음공부의 출발점입니다. 아마 그래서 이 법문이 「성리품」맨 앞에 자리한 이유일 것입니다.
〈나의 마음공부〉
• 내게 ‘청풍(淸風)’은 언제 불어올까요?
• 나의 ‘마음 달’(성품, 본성)은 온전히 빛나고 있나요?
• 나는 ‘만상(萬像)’을 얼마나 온전히 밝게 보고 있나요?
• 나는 공부를 함에 따라 지혜가 자연히 밝아지고 있음(自然明)을 느끼고 있나요?
최정풍 교무 소태산마음학교, 원남교당
9월 11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