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연구회창건사 (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44호) 
상태바
불법연구회창건사 (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44호) 
  • 한울안신문
  • 승인 2026.09.15 15:43
  • 호수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3장 대종사 불법에 대한 선언
대종사께서 단원의 기도가 끝난 후에는 모든 신자에게 불법으로써 말씀하여 이르되 “이제는 우리가 배우는 것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잘 가르치자는 것도 또한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하여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내가 진작 이 불법의 진리를 알았으나 그대들에게 지금까지 이러한 말을 결단적으로 하지 않은 것은, 그대들의 정도가 아직 그 진리 분석에 미치지 못한(미급, 未及) 바가 있고, 또는 현재 불법이 수백 년 동안 천대를 받은 여풍(옛풍습, 餘風)이 남아 있으므로 누구나 물론하고 불교의 명칭을 가진 자에게는 존경의 의사가 적게 되나니, 열리지 못한(미개, 未開) 인심에 있어서 겸하여 시대의 존경이 적은 만큼 법의 사정(邪正, 그릇됨과 올바름) 진위(眞僞, 참과 거짓)를 물론하고 오직 인심의 흘러가는 방향(추향, 趨向)을 따라서 순서 없는 교화로써 한갓 발심 신앙에만 주력하여 왔거니와, 이제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 중생의 복혜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부득이 이 불법을 주인 삼지 않을 수 없으며, 그뿐만 아니라 미래 수십 년이 지나가면 장차 조선의 주교가 될 것이요, 조선의 주교가 된 뒤에는 또한 세계적 주교가 될 줄로 예상하는 바이다. 
그러나 미래에 돌아오는 불법은 재래에 지켜오던 불법의 제도가 아니라 사농공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개별적 등상불에만 귀의할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 허공을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 알아 잘 행하면 그것이 곧 불법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공부를 잘하면 세상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며, 또는 불공하는 법도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자(佛供者, 불공하는 사람)의 일과 원을 따라 그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갈리게 되나니, 이리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 부처의 은혜가 화피초목(化被草木) 뇌급만방(賴及萬方)이 되어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니, 그대들이여 기뻐할지어다. 시대가 비록 천 만 번 윤회하나 이같은 기회 만나기가 어려운데 우리는 다행히 만났으며, 허다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드물거늘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기회를 얻어 처음 회상에 창립주가 되었으니, 그대들은 오늘에 있어서 아직 증명하지 못할 나의 말일지라도 허무하다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지도에 의하여 차차 지내가면 머지않은(불원, 不遠) 장래에 가히 그 실지를 보게 될 것이다.” 하시니, 단원 등은 일제히 기뻐하며 믿고 받드는지라(신수봉청, 信受奉聽). 대종사께서 이에 사업 기관인 저축조합의 이름을 고쳐 불법연구회기성조합이라 명칭하시고, 그 외 모든 기록에도 일제히 불법의 명호를 쓰게 하시니, 때는 곧 10월 6일이었다.

제14장 대종사의 봉래산 수양과 본회의 준비공작
대종사께서 일찍이 입산을 뜻하사 3월경에 오창건을 데리시고 전북 부안군 산내면 월명암에 행차하여 10여 일 머무신(유연, 留連) 뒤 환가하시고, 7월경에는 다시 송규를 그곳에 파견하사 미래 근거를 정하게 하셨더니, 이에 이르러 단원의 공사가 이미 끝남을 따라 조합의 후속사무를 여러 사람에게 각각 부탁하시고, 몇 년간(기년간, 幾年間) 수양의 계획을 세우시고 10월 20일에 오창건을 데리시고 월명암에 행차하실 때, 단원 및 영광 일반 신자는 모두 섭섭한 눈물로써 대종사를 배별(拜別)하였고, 대종사의 행색은 심히 표연(漂然) 하여 복잡한 세상(진세, 塵世)을 뒤에 두시고 곧 구름과 안개(운무, 雲霧)를 향하여 신선의 길을 떠나신 느낌이 있었다. 그리하여, 서해 연변을 순회하며 그 다음날(익일, 翌日)인 21일에 원래 목적지인 월명암에 도착하시니, 오랫동안 몹시 기다리던(고대, 苦待) 송규는 환희(歡喜) 용약(湧躍)한 마음으로 배알하였고, 당시 월명암 주지화상 백학명도 또한 반가이 영접하여 심히 친절하였다.

(주註) 대종사의 봉래산 행차는 그 이면에 어떠한 이유가 있었던가? 이제 그 대략을 말하자면, 첫째는 오랫동안 복잡한 정신을 다시 휴양하기 위하심이오, 둘째는 재래불법의 교리와 제도를 실지 참고하여 장차 혁신할 본회의 교리와 제도를 초안하려 하심이오, 셋째는 사방에 있는 인연을 서로 연락하여 장차 회문 열 준비를 하기 위하심이오, 넷째는 분망한 세상에 또한 중인의 지목을 피하기 위하심인 듯하다.  (10월호에 계속)

9월 18일 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