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몰입의 힘과 그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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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몰입의 힘과 그 조건
  • 정형은
  • 승인 2022.07.25 09:48
  • 호수 1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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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은 여의도교당 교도(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정형은 여의도교당 교도(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6월 18일 북미 최고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열여덟 살 임윤찬 군이 우승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준우승에서 난해하기로 소문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곡을 65분간 쉬지 않고 연주하는가 하면, 우승에서 ‘악마적 기교’를 요구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연주가 끝나자 긴 기립박수가 터지고 지휘자 마린 올솝은 감격한 듯 눈물을 훔쳤다.

악기 하나쯤 다루는 게 좋겠다는 어머니 권유로 7살 때 동네 학원에서 늦게야 피아노를 시작한 임윤찬은 그저 음악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피아노와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며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0.1%도 없다고 말했다. “베토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검토와 또 검토를 하는 그런 습관을 제 인생에서도 더 기르게 되는 거 같고, 마음에서 나쁜 것을 품으면 음악이 정말 나쁘게 되고 마음으로부터 정말 진심으로 연주를 하면 음악도 정말 진심이 느껴지게 되는 게 음악의 정말 무서운 점”이라고 말하는 그는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책 읽기도 즐겼다.

해외 유학의 경험 없이 국내파로 성장한 임윤찬은 자신의 음악에 영감을 준 인물로 신라시대 가야금 연주자 우륵을 꼽았고, 민요 아리랑을 연주했다. 전율과 감동의 눈물이 저절로 흐르게 만드는 그의 연주를 지켜본 세계인들은 격찬을 쏟아냈다.

7월 5일에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허진이 교수가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어릴 때 수학을 별로 잘하지 않아 물리천문학과에 입학하여 수학을 복수전공하던 그는 우연히 석학초청강연에 초청된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강의를 들으며 수학에 매료되었다. 처음에 대형강의실을 가득 채웠던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 빠져나가고 마지막에 다섯 명만이 남았는데 허진이 학생이 그중 하나였다. 이후 허진이는 수학에 몰입하여 본격적인 수학자의 길을 걷는다. 2012년 리드추측, 2018년 로타추측 해결 등 계속해서 혼자 또는 동료들과 수학의 오랜 난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원래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석사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한국교육에 대해 그는 “학창 시절을 공부가 아니라 평가받는 데 사용하게 되는 것은 수학 그 자체나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에 있다”고 보고 “학생들이 현실에 너무 주눅 들지 말고 적성이 있는 분들은 도전하고,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하기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폭넓고 깊이 있는 공부하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밝혔다.

무더운 날씨에 한국에서 위대한 예술가와 수학자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니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럽고 상쾌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남들의 시선과 평가, 콩쿠르나 수상 등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마음을 내어 몰입해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 심성은 무엇일까. 겸손하고 정직하며, 진심을 다하는 그 마음이 못내 아름다웠다. 부모도, 스승도 그 몰입을 지켜보고 서두르지 않으며 자기 길을 내어 스스로 가도록 응원한 덕이 아닐까. 좋은 인연을 만나, 우리 사회의 강박적인 성과주의와 ‘다’ 잘 해야 한다는 만능으로 내몰리지 않은 것도 커다란 복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책 읽고 시 쓰면서 음악이 소통이고 수학이 관계임을 발견한 그들의 몰입의 힘과 그 조건이 한국교육에 대해 던지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7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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