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에서 온 편지] 영혼을 일깨우는 보시布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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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 영혼을 일깨우는 보시布施
  • 유성신
  • 승인 2022.07.26 17:28
  • 호수 1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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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 16
유성신<br>서울교구 오덕훈련원 원장<br>
유성신
서울교구 오덕훈련원 원장

어느 가을 상사화와 꽃무릇이 만발했던 때에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라는 절에 간 적이 있다. 도심을 벗어나 산사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여백의 운치를 한가로이 즐길 수 있었던 이곳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보시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최고급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그가 일생을 통해 사들인 대지 7,000여평과 건물 40여채를 시주하였다. 스님의 거듭되는 거절 끝에 쉽지 않은 시주를 하며 ‘임종 후 유해를 절 마당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995년 당시 시가로 1천억원이 넘는 재산을 법정 스님께 희사하여 오늘의 길상사라는 절로 탈바꿈하였다.

아깝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천억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북에 두고 온 사모하는 백석 시인을 그리며 독신으로 살아오는 동안 일생 모은 재산이 죽음 앞에서 물거품과도 같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대승불교에서는 생사고해를 건너 이상의 열반세계에 이르게 하는 보살이 닦아야 할 수행법으로 6바라밀이 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실천행이 보시 바라밀이다. 바른 보시란 삼륜청정의 보시다. 보시하는 자가 청정해야 하고, 보시받는 자가 청정해야 하며,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해야 한다.

같은 재물을 베풀어도 잘 베풀어야 한다. 좋은 토양에 뿌린 씨앗은 쉽게 움이 트고 꽃이 피며 튼실한 열매를 맺듯이 고귀한 정제를 누구에게 보시할 것인가? 베풀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탐욕과 어리석음이 없는 청정한 사람, 지혜가 높고 깨달은 사람에게 베풀어 그 보시의 공덕으로 만생령을 살리는 빛나는 복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고 나눈 뒤에는 흔적이 남지 않아야 한다. 한때의 명예로 보답을 바라거나 보시를 하고도 간섭과 시비가 생기면 그로 인해 복이 죄로 화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형상 있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변화된다는 공함을 깨쳐 알아 무주상보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보시를 받는 자에게 있어서도 내 욕심으로 받는 보시가 아니라 법 있게 베푸는 청정한 보시가 이루어져 그 공덕이 무루의 복전이 되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청정한 물건이란 정당한 노력으로 얻은 소중한 재물을 말한다. 사람도 태어나서 한세상 살다가 가듯이 물질도 나에게 흘러들어왔다가 언젠가는 떠나간다. 한 생애를 통해 축적하고 모은 재산을 어떻게 쓰고 가는가?

천둥 벼락과 같은 무상함 앞에 마음이 허공처럼 텅 비어 너와 내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이때 통찰의 지혜로 바로 비추어 베푸는 보시야말로 내 영혼을 깃털처럼 가벼워지게 하는 참 보시가 된다. 거기에는 오직 조건 없는 기쁨과 즐거움만이 있을 뿐이다.

타는 대지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만생령을 살린다. 만물의 영장인 우리도 이 우주의 존재 가치로써 마음이 열려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주는 물건도 흔적이 없을 때 가장 빛나는 보시가 이루어진다.

성북동에 가면, 참 영혼을 일깨우는 길상사가 있다. <금강경>에서는 ‘항하사 모래수의 칠보 보시도 상 없는 법 닦음만은 못하다’고 하였다. 인연이 다하면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사라져 간다. 나라고 하는 실체 없는 공함을 깨우쳐 무상보시의 공덕으로 세세생생 불연을 여의지 않고, 혜복의 밝은 길을 열어 가기를 염원한다.

7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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